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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May 22. 2020

엄마의 이직

애는 누가 키우는지 그만 좀 물어보세요. 엄마의 욕망은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올해 이직을 했다. 모 건설회사의 사내변호사로 있다가 로펌으로 옮겼다. 아직 애들이 어린 워킹맘이다 보니 이직을 할 때도 고민할게 정말 많았는데 처음 이직을 생각한 시점으로부터 결심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나의 전 직장은 머랄까 나무랄 데 없었다. 대기업이라 안정적이었고, 윗분들도, 팀 동료들도 좋은 분들이었다. 건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입사해서, 이것저것 일하고 배우고 놀라고 좌절하고 감탄하다 보니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갓 변호사가 되어 입사한 그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그런데 너무 '안정적'이었을까. 나는 자꾸 스스로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의 하루하루는 반복되었고, 내가 하는 일들도 어느덧 유형화되어, 새롭지 않았다. 오늘이 어제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일도 오늘 같을 것 같았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서워졌다. 지금의 이 안락함은 내일의 나에게는 독이 될 것이라.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해서는 우울했다. 직장내 상황을 자세히 알리 없는 부모님, 남편을 붙잡고 투정을 부렸다. 10년 뒤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기업에서 근무한 이력을 떼고 '변호사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뭐가 남아있을까. 답은 뻔했다. 나는 더 배워야 했고, 더 경험을 쌓아야 했고, 아직은 더 구르며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워킹맘이었다. 아이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는 두 딸이 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엄마 회사가 안가?"를 묻는 딸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린이집 상담이나 영유아 검진과 같은 소소하지만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들을 위해 나의 일정을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어야 했다. 이미 부모님께 손주 육아라는 큰 짐을 지워드렸는데, 더 편하게 해 드리지는 못할망정 힘들게 해 드리기는 싫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안정적인 체계를 흔든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욕망하고 포기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어느덧 수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욕망하는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에 갑갑함을 느꼈고, 입만 열면 "머 어쩌겠어", "나쁘지 않아", "괜찮지머"와 같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애매모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나의 애매모호한 욕망에 불을 붙여주신 분은, 나의 아빠였다. 이미 젊은 시절 대기업에서 일해보신 아버지는, 대기업이 주는 안락함 속에서 많은 인재들이 자기 발전에 게을러지기 쉽다는 것도 알고 계셨고, 그런 인재들이 회사 내에서 언젠가 마주하게 될 한계와 좌절도 알고 계셨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나의 의미 없는 투정을 듣고 계시던 아빠가 나의 답답함을 알아보시고 거침없이 외치셨다. "옮겨, 너 하고 싶은 거 알아봐, 아이들은 아직 우리가 볼 수 있으니까." 그 한마디에 나는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내변호사로서는 좀처럼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송무와 중재의 경력을 쌓기 위해 조금 늦은 나이에 로펌 어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이와 같은 결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통보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애는 누가 키우고?"라는 말이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남편이 이직을 했다면, 주로 연봉이나 커리어와 같은 이직 동기를 궁금해했을 텐데, 내가 워킹맘이다 보니 사람들은 나의 이직이 우리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아이들을 잘 돌보기 위해 현 직장에 왔고, 이직을 할 때에도 아이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으로 미리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엄마라고 해서 꿈을 가지고, 욕망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라는 사랑스러운 존재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지만, 엄마는 본인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한다. 인간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우울해진다. 내일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느낄 때 오늘을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엄마의 오늘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엄마도 꿈이 필요하다. 과거의 엄마들은 자식이 잘되는 꿈을 가졌다. 꿈이라는 게 나쁘다 좋다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꿈은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아주 명료한 사실을 너무 쉽게 간과해버린, 그러다 보니 매우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었다.  


물론 꿈을 찾아 남편, 아이 모두 버리고 훌쩍 떠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음속에 꿈을 품은 채 아이들을 돌보며 천천히 실행에 나가면 된다. 나는 내가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한 달쯤 고민했을 이직 문제를, 엄마라는 이유로 일 년을 고민했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업무시간을 확보하고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며, 부모님의 육아에서 퇴근시켜 드리고자 나도 늦지 않게 퇴근을 한 후,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다시 남은 일을 들여다본다. 피곤한 날들이 종종 있지만 이렇게 10년을 고생했을 때 나는 더 나은 변호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설렘은 모든 것을 이겨내게 만든다.


꼭 변호사가 아니어도, 굳이 워킹맘이 아니라도, 나는 모든 엄마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어도, 신문에 나올만한 거창한 꿈이 아니라도 좋다. 조금 더 요리를 잘하는, 조금 더 건강해지는, 조금 더 영어를 잘하는 것 같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것이라도 욕망하고 꿈꾸고, 그것들을 위한 노력으로 단 30분이라도 오늘을 채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내는 설렘과 행복들로 엄마 자신의 인생을 채웠으면 좋겠다. 사실 그건 엄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엄마가 가르치는 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보고 따라 하며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꿈꾸는 엄마는 꿈꾸는 아이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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