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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May 19. 2020

가끔은 내리는 비를 맞아도 괜찮아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인생의 비는 너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 

두 딸의 엄마로서 항상 신경 쓰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딸들이 '공주'처럼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다. 두 딸의 일상을 지켜보면 때맞춰 식사와 간식이 차려지고, 대부분의 원하는 장난감은 쉽게 손에 넣으며(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엄마, 아빠가 돌아가며 하나씩만 사줘도 상당한 양의 장난감이 된다), 항상 "예쁘다", "공주님" 소리를 숨 쉬듯 듣다 보니, 자칫 세상모르는 공주님처럼 자랄까 줄곳 걱정이 된다(외관상으로는 이미 분홍색으로 도배를 하고 공주의 길을 가고 있다ㅠㅠ). 


누군가 인간은 가장 이기적인 상태로 태어난다고 했던가. 신생아들을 보면 배가 고파도, 졸려도, 용변을 봐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에 차 울음을 터뜨리고 한창을 안아서 달래줘야 겨우 그친다. 서너 살이 되어도, 엄마가 아파도 가차 없이 안아달라고 올라타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길바닥에 드러눕기는 마찬가지다. 타인의 배려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욕구가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조차 용납하기 어려워한다. 결국 자라면서 타인과 수없이 부딪히고 인내하고 상처받고 깍여야 제법 그럴듯한 어른이 된다.  

 

물론 차차 자라면 다 해결이 될 것이며, 아직 어린데, 좀 귀하게 자라면 어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지금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물론 지금 아이가 타인에 대한 배려라든지, 공공장소에서의 도덕이라든지 모든 내용을 이해하는 것까지 바랄 수는 없겠지만 상황에 대한 올바른 설명은 반드시 해주려고 노력한다. 장소를 불문하고 안아달라고 한다던지 소리를 지른다던지 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여섯 살인 딸이 한 번은 사슴 같은 눈망울로 "에휴, 엄마는 왜 이렇게 나에게 바라는 게 많아"라고 할 정도이니 가끔은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받은 아이와 귀하게만 자란 아이는 위기의 순간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걸 알기에 굳이 귀찮아도 설명을 덧붙이게 된다. 사랑받은 아이는 본인을 지금까지 지켜준 사랑으로 위기의 순간을 버텨내지만, 귀하게만 자란 아이는 위기의 순간에 분노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데, 세아이를 키우며 편찮으셨던 외할머니까지 돌보시던 우리 엄마는 딸들의 학교에 거의 오신 적이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걸어서 10분 거리이던 하굣길에 다른 엄마들은 운전을 하거나, 못해도 우산을 들고 아이를 데리러 오곤 했는데, 우리 엄마는 오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 나는 실내화 주머니를 머리에 쓰고 조심스레 걷다가, 나중에는 그냥 비를 맞고 걸어가곤 했다.


한 번은 중학생 때, 우산이 없어 비를 흠뻑 맞으며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너무 생생하다. 처음에는 어떡하지라고 걱정을 하다가, 일단 기다려보자 하고 버텨보다가 나중에는 촉촉해진 머리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가 제법 산뜻하고 즐거웠다. 버스가 늦어져서 비를 좀 오래 맞았는데, 비를 한창 맞고 난 뒤의 내 느낌은 '비 맞아도 별거 없구나..'였다. 나는 그렇게 우산이 없어도 비를 맞으며 귀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살다 보면 인생에도 비가 내린다. 본인이 뜻한바대로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몸이 아플 수도 있고, 시험을 망칠 수도 있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나면 가장 좋겠지만, 살면서 모든 어려움을 피해 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물론 그런 어려움의 발생을 애초에 차단시켜주는 능력 있는 엄마들도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인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우리 딸들이 우산이 없다고,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귀가도 못하고 학교 앞에서 울고 있기보다는, 과감히 비를 맞으며 걸어갔으면 좋겠다. 빨리 뛰어가도 좋고, 천천히 조심스레 걸어가도 좋다. 실내화 주머니를 머리에 뒤집어써도 좋고, 겉옷을 벗어 머리에 둘러도 좋다. 그냥 걱정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흘러내리는 비를 묵묵히 견뎌내며 그렇게 천천히 집에만 오면 된다. 그렇게 집에 오고 나면, '아 비 맞는 것도 별거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홀로 비 맞으며 걸어온 기특한 아이를 꼭 껴안아 줄 수 있는 따뜻한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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