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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Jun 11. 2020

너희들이 잠든 사이

엄마가 아닌 내 안의 나를 깨우는 시간

워킹맘으로서의 내 일과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엄마인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다. 아직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 몰래 일어나서 후딱 준비를 하고 일터로 향하면 일하는 시간에 돌입하고, 퇴근해서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한 번씩 꼭 안아줌과 동시에 그때부터는 엄마로서의 시간이 시작된다.


개인적으로는 일하는 시간보다 나는 엄마인 시간에 더 바쁘다. 변호사도 일종의 사무직이다 보니, 나는 대부분의 일하는 시간을 책상 앞에서 눈알이 빠져라 모니터를 보며 번개같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가끔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는 이런저런 책을 뒤져보고 고민도 하지만 책상 언저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또 일하는 내용별로 시간을 기록하면서 일하는 로펌 어쏘의 특성상 내 시간이 어떤 일로 어떻게 쓰이는지 추적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런데 엄마인 시간은, 마치 잠시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간다. 저녁밥을 먹고, 아이들과 좀 놀아주고, 좀 씻기고, 침대에서 책을 몇 권 읽어주면 빠르면 9시 반, 늦으면 10시 반. 나의 소중한 퇴근 이후의 시간들을 요정 같은 아이들이 홀랑 훔쳐간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나만의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킹맘의 아이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을 하나 꼽자면, 나는 기꺼이 이른 취침시간이라고 말하겠다. 이때 '이르다'는 의미는, 초저녁부터 잠들면 엄마인 내가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안될 것이고, 늦어도 9시에서 9시 반 정도까지만 아이들 취침에 성공한다면 워킹맘의 인생은 훨씬 여유가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잠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뒤로한 채 조용히 문을 닫고 나서면, 아직은 잠들지 않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요정들이 꿈나라로 간 그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이다. 나는 남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운동을 할 수도 있으며, 밀린 드라마나 예능을 볼 수도 있고, 남편과 맥주 한잔하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매번 그 시간에 하는 일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나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콧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잠든 날이면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며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이 시간 또한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매일같이 아이들이 일찍 자주면 좋으련만, 워킹맘의 아이들은 유독 취침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이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저녁이 되어 엄마가 귀가하면 흥분해서 열심히 놀려고 하고, 어떨 때는 졸린 눈을 부릅뜨며 놀자고 달려들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귀가한 엄마도 하루 종일 보고 싶었던 아이와의 깊은 정을 나누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때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순간의 선택이 그날 밤과 다음날 아침 나의 컨디션, 나아가 나의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제시간에 잠들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숨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1일 1 놀이터 필수다. 꼭 놀이터가 아니더라도 1일 1 야외활동 필수이다. 낮에 햇빛을 많이 쬐며 신체활동을 충분히 해주는 것이 깊은 수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목욕을 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도 게으른 엄마라 매일 같이 시키지는 못하지만 한 번씩 욕조에 물을 받아 거품 목욕제를 뿌려놓고 아이들에게 놀자고 하면 아이들은 세상 신나게 논다. 또 9시 전후로는 집안에 불을 끄고,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모두 침대에 자리를 잡으면 취침모드로 바로 도입한다. 조용히 책을 보던 아이가 스르르 눈을 감으면 내 마음속에서는 환희의 폭죽이 터진다!!!!


때로는 엄마가 쉬기 위해 또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아이를 서둘러 재우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고 매정한 것 아닌가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하지만, 아이가 일찍 자야 하는 이유는 굳이 엄마의 휴식시간 확보 말고도 가지가 있다. 그래야 아이들도 키가 크고, 두뇌가 발달하며, 다음날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가 있다. 이렇게 이른 취침이 아이들의 발달에도 좋고 엄마의 휴식에도 좋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가끔은 아이들을 재우다가 엄마도 함께 잠들어버리는 날도 적지 않다는 건 절대 안 비밀이다.


또 내가 찾아낸 워킹맘의 '틈새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다. 왕복 2시간 출퇴근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힘들겠다고 걱정을 하지만, 이 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애정 하는 시간 중 하나이다. 이 시간은 나의 밀린 예능, 드라마를 몰아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어디엔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보고 싶었던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서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고, 무엇보다 드라마 한 편 보고 나면 회사나 집에 벌써 도착해있다는 장점도 있다.   


워킹맘도 사람이다. 전지전능한 어머니를 요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는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지만 나도 매우 사랑한다. 내가 나를 찾지 못하면, 올바른 모습으로 아이를 마주할 수 없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늘 본인을 돌보느라 늘 무리하고 어느 순간 지쳐 녹초가 되어있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초단위라도, 분단위라도,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나만의 시간을 갖았으면 좋겠다. 건강하고 행복한 엄마 밑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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