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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Jun 09. 2020

아이를 낳아도 괜찮아..

82년생 김지영 언니에게 드리는 아이 둘 워킹맘의 한마디..

요즘은 여행을 갈 때도, 음식점을 갈 때도, 영화를 보러 갈 때도 후기를 미리 읽고 간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미리 준비가 필요한 부분은 준비하고 ,피해 가야 할 부분은 피해 가는 것은 약간 작위적인 느낌은 있지만 나름대로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면, 느낌이 가는 대로 바람과 같이 훌쩍 떠나기보다는, 각종 블로그를 뒤져서 후기가 좋은 숙소, 음식점을 골라서 다니는 편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후기에는 개인의 취향이나 기대치에 따라 편차가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수 맛이 진하게 나는 쌀 국숫집을 강추할 것이지만, 정작 내가 가서 먹어보면 입맛에 잘 안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에 82년생 김지영 열풍이 불었었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통해 집에 아이와 함께 있는 여자는 집에서 하루 종일 신나게 노는 줄만 알았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한 여성이 결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겪는 혼돈과 우울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소설은 아직도 읽지 못했고, 열풍이 한창이던 그 시기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목구멍이 죄여 오는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누군가 앞으로 다가올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해서 82년생 김지영 언니의 '후기'를 참고한다면 정말 말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를 낳아도 생각보다 괜찮아..


82년생 김지영 언니의 상황에서 내가 유일하게 공감을 했던 부분은, 아이를 낳고 김지영 언니가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었다. 가사와 아이 뒤치다꺼리로 온종일을 보내고, 본인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한 멍한 표정의 김지영 언니의 모습은, 한때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잠도 못 자고 우는 아이를 재우려고 아기띠를 매고 온 집을 돌아다니다가 베란다 앞에 섰을 때 당시 13층이 었던 집의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산후 우울증의 경계를 잠시 맛본 아찔한 순간이었다. 일생에서 단 한번 경험해본 그 이상한 느낌 덕에 아이를 낳은 여자가 얼마나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겪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나는 김지영 언니에게 등짝 스매시를 날리며 동네 아주머니처럼 잔소리를 하고 싶어 졌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당신의 아기는 매우 순한 편이며 (영화 내내 넋을 놓고 있는 엄마 뒤에서 혼자 잘 놀고, 딱 한번 운다), 그만큼 컸으면 어린이집에 보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싶다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잠깐 맡겨 놓고, 그 시간만큼 아르바이트나 재택업무를 시작할 수 있고, 아이가 더 커서 어린이집 종일반을 다닐 수 있게 되면,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된다. 당장 보란듯한 대기업에 바로 입사하거나, 마케팅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기는 어렵겠지만, 아이 때문에 일을 아예 못한다는 것은 김지영 언니가 처한 상황에 대한 '팩트'가 아니라, 김지영 언니가 아이 때문에 일을 하지 않기로 한 '선택'으로 인한 것이었다.


또 남편과의 대화를 단절한 부분은 정말 답답했다. 육아든 직장 복귀든 머라도 하려면 김지영 언니는 남편과 적극 상의하고 설득해야 했다. 아내가 빙의라는 비현실적인 상태에 이르기까지 남편은 아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며, 김지영 언니는 남편이 이해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남편이 지속적인 무관심 속에 그렇게 되었다면 또 어느 정도 이해는 될 테지만, 영화 속 남편은, 퇴근함과 동시에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팔을 걷고 들어오고 아내의 복귀를 위해 육아휴직까지 고민하는 그런 세상 다정한 남편이었다. 남편과 충분히 상의한다면 김지영 씨의 커리어는 굳이 단절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댁과의 관계에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명절 때 설거지를 하고, 시어머니가 시누이를 보고 친정으로 가라고 했다고 시집살이인 것처럼 반응하지만, 나는 명절 때 우리 엄마 힘들까 봐 친정에서 설거지를 한다. 시어머님이 그 많은 음식을 다 준비했는데 나는 니 딸이 아니니 설거지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또 친정에 가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시누이를 잠깐 보고 가라는데 그것 가지고도 그렇게 맘 상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시집가면 친정에 돌아오기 힘들던 시절이야 명절에 한번 겨우 보는 거니 한두 시간 늦게 가는 걸로 예민해질 수 있다고 하겠지만, 맘만 먹으면 주말마다 강원도든 부산이든 기차를 타고 다녀올 수 있는 요즘 세상에(나라면 바로 다음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친정에 가서 놀고 올 것이다), 그걸로 시어머니에게 막말을 할 정도로 증오할 문제는 또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지영 언니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질병을 알고 약을 지어 부산에서부터 올라오는 며느리에 대한 애정이 있는 시어머니였다.


나는 결론적으로 만약 내가 김지영 언니의 입장에 처하더라도, 1.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고, 2. 잠시 속도를 늦추더라도 내 커리어에서 할 수 있는 지속 해나가며, 3. 남편과 잘 상의해서 정상 커리어로 복귀하는 계획을 짜고, 4. 나의 커리어 단절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남편이나 시댁에 돌리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내가 그 상황에 있었더라도(남편이 공유라니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는가) 나는 지금과 같은 워킹맘의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이를 둘 낳고 키우고 있는 여자로서, 아이를 낳음으로써 오는 '손해', 즉 감정과 신체의 변화, 노동량의 증가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또는 아이를 낳는 것이 망설여진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고 키움으로써 얻게 되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득'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이는 잭 니콜슨이 나오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 나오는 한 문장으로 표현이 되는데,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너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본인의 쾌락을 위해 설정할 수 있는 목표와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에 한계가 있다.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서 힘들게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건강을 관리하기에는 인간 본연의 의지가 너무 약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남, 그중에서도 내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생각했보다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 금메달을 따면 기쁠 것 같아서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는,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기쁘기 해드리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금메달을 딴 사연 있는 선수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고, 죽음의 기로에서도 가족이나 연인을 떠올리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워킹맘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능력 있는 인재일 수도 있지만, 아이를 낳고 사랑함으로써 그 아이를 더 잘 돌보고, 그 아이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자 하루하루를 더 신중히 살아가며, 더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들의 마음가짐은 워킹맘들로 하여금 항상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고, 아빠는 딸을 셋이나 키우느라고 고생이 많았겠어"라고 아빠에게 이야기했을 때, 우리 아빠는 아주 단순하게, "힘들었지만, 좋을 때가 더 많았어"라고 아련하게 대답하셨다.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아이를 낳았을 때 맞닥뜨리는 여러 변화와 책임 때문에, 누군가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는 것은 월권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도 괜찮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세상의 여느 일들처럼 힘들겠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내가 투자하는 에너지에 비해,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게 되고, 노력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는 커다란 선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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