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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Aug 21. 2020

좀 놀 줄 아는 3대 가족의 비 내리는
여름휴가

좀 놀 줄 아는 사람들은 서로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우리 가족은 좀 놀 줄 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골프장에 따라다니고 코끼리표 보온도시락을 들고 다니셨다는, 믿거나 말거나 다소 부유했던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어머니는 소풍이든 여행이든 떠나는 데는 일각 연이 있으셨고, 시골 대가족에서 자라 좀처럼 놀아보지 못했던 아버지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참새 같은 세 딸을 데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기저기 놀러 다니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딸들도 노는 걸 좋아할 수밖에.


우리 가족의 이러한 성향이 최대치에 달했던 시기는, 아버지의 업무로 유럽에서 몇 년을 보내게 되었을 때였다. 2 달마다 2주의 방학이 있는 유럽의 학제와 자동차만 있으면 쉽사리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지리적 환경은 우리 가족을 잊을 만하면 짐을 싸게 만들었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참으로 많이 놀러 다녔다. 어머니는 마치 피난이라도 가는 것처럼 거대한 짐과 풍족한 간식을 챙기셨고, 아버지는 밤새도록 눈이 시뻘게지도록 운전을 하셨으며, 세 딸은 노래를 부르다, 간식을 먹다, 싸우다, 잠들다를 반복하며 유럽 방방곡곡을 누볐다. 


이런 경험을 함께 공유해서 그런지, 우리 가족은 여행 가는 걸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여름휴가는 꽃 중의 꽃이다. 내 기억으로는 고3이었을 때에도, 사법고시 공부를 할 때에도 여름에는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갔다. 매년 봄부터 '올 여름휴가는 어디 가지?'식의 콘셉트 구상에 들어가서 여름이 채 오기 전에 예약을 모두 마치는데, 올해는 정말 어려웠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지'의 선정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7월 중순부터 시작된 갑작스러운 '우기'로 인해 날씨가 여행에 주는 유익을 누리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망했다'라고 하지 않고, '어려웠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즐거운 여름휴가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을 부모님에게 맡기고 나서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에 대한 몇 가지 철칙 및 노하우가 생겼는데, 대충 한번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원칙적으로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간다. 우리 가족은 친정부모님과 일상을 공유한다.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눈을 뜨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내가 퇴근해서도 저녁까지 함께 먹으니, 떨어져 있는 시간이라고는 자기 전에 몇 시간 정도이다. 이렇게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하다 보니 굳이 여행까지 같이 가야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함께 상반기 내 아이들을 뒤치닥 거리 하며 함께 열심히 일상을 보내셨으니, 모처럼의 휴가도 함께 하는 것이 맞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즐거운 여름휴가의 추억이 있다면, 일상에서도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함께 힘을 모아 각 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온 가족끼리 포상휴가를 가는데, 누구는 가고 누구는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가끔은 일정에 따라 하루 이틀 당기거나 미뤄서 우리 부부와 아이들만의 시간을 빼기도 한다.


둘째, 장소는 휴식과 오락이 모두 가능한 곳으로, 일정은 아이들에게, 음식은 최대한 부모님에 맞춘다. 사실 당사자가 여러 명이고 연령대도 다양하다 보니 휴가 계획을 짜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누군가는 바다에, 누군가는 산에 가고 싶을 수 있고, 매번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만 해도, 부모님은 산채비빔밥, 아이들은 짜장면을 외치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이럴 때 주 결정권자인 나로로서 모두 수긍시킬 수 있는 원칙이 필요하게 되었다. 올해 여름휴가의 장소는 부모님의 의견과 우리 부부의 의견을 절충하여 산과 바다를 각각 3일씩 다녀왔다. 장소는 강원도였는데 동해안에서 3일을 보내고, 홍천으로 와서 3일을 보내니 딱 좋았다. 세부 일정은 대체적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에 좀 더 비중을 두는 편이다. 부모님은 경치를 바라보든지 산책을 하든지 일정에 있어서는 크게 욕심을 내시지 않으신 반면, 아이들은 수영장에 가고프다든지, 목장에 가고프다든지 원하는 것이 보다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음식은 최대한 부모님에게 맞추는데,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이 뭔가 지역음식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많으시고, '식사'에 대한 애착이 더 크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드시고 싶어 하시는 음식들이 더 건강한 메뉴일 경우가 대부분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만 보아도 짜장면이나 돈가스를 외치던 아이들도 얼떨결에 초당 순두부집에 끌려가서는 순두부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오기도 했다.


셋째,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함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여행에 갔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예측 불가한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는데, 때마침 지역 축제기간이라 밤새 숙소를 구하지 못해 차에서 밤을 지새운다든지, 시험을 치르고 급하게 여행을 떠난 나머지 여행 도중에 위경련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든지, 가는 길에 차가 고장 난 다든지, 여행은 일상보다 편하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즐겁기 위해 떠나는 것인 만큼, 얼마든지 불편한 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더 즐겁게 보내느냐의 문제만 남는데, 이 문제의 실마리는 여행의 동반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여행만 해도, 정말 이렇게 비가 계속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비가 온다고 해서 여행이 재미없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숙소 내 수영장과 키즈룸에서 아이들을 신나게 놀리고, 강릉과 양양의 작지만 예쁘고 맛있는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커피투어를 하고, 모처럼 하루 해가 났을 때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바다로 향해 해수욕을 즐기며, 그렇게 날씨를 상전처럼 모시는 여행을 했다. 모처럼의 여름휴가에 비가 주룩주룩 끝없이 쏟아져도 마냥 웃고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놀고 있다는 사실 말고 다른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즐겁게 보낸 여름휴가 1주일 이후 나의 휴대폰에는 정확히 370장의 사진이 남았다. 부모님이나 남편이 찍은 사진까지 합치면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진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 우리는 활짝 웃고 있다. 좀 놀 줄 아는 사람들은 서로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여름휴가도 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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