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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Aug 24. 2020

워킹맘의 사회생활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여자가 큰 일을 하려면 꼭 필요하다고!!

예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유형의 글을 몇 개 본 적이 있었다. 남편이 또는 남자 친구가 직장이 XX인데, 하루 이틀 건너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오는데 그곳 분위기가 실제 그렇냐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런 글을 보면, 남편 또는 남자 친구가 하는 말을 고스란히 믿을 수 없는 현실도 씁쓸하고, 그 글을 올리는 당사자가 얼마나 지쳤으면 이런 글까지 올렸을까 싶어서 안타깝기도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상'이라는 그 말, '남자의 사회생활은 필수'라는 그 말,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잘 살펴보면 내가 직접 회사생활을 해보니 그 말이 마냥 당연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지고, '꼰대' 상사들이 비난받는 시대에, 워킹맘으로서의 나의 사회생활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의 대기업 생활 끝에 나는 꼰대가 되었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꼰대라는 것이 썩 좋은 의미가 아님은 알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말하는 꼰대의 의미는 '협업을 위해 지켜야 하는 또는 지키면 좋은 암묵적인 룰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면 회사에 출근할 때는 정시보다는 알아서 조금 일찍 출근하고, 일을 할 때는 시키지 않아도 진행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회식이 있으면 되도록 참석하는 그 정도랄까. 사실 내가 자발적으로 꼰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데 편하기 때문이다. 정시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면 그날 하루의 일과를 전체적으로 훑고 미리미리 계획하 기기가 용이하고, 일의 진행상황을 자주 공유하는 것은 그래야 갑자기 상사로부터 급작스런 "다했어?" 또는 "아직도 안 했어?"라는 식의 취조와 질타를 미리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회식이 있으면 되도록 참석하는 이유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가족 같지는 않아도(회사 사람들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어야 함께 일하기가 편하고 더 즐겁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나에게 허용하는 사회생활의 수준은 "회사 동료와의 적절한 친분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에 참석하는 수준"정도가 되겠다. 정기적인 회식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필히 참석하고, 사적인 회식은 필요시 미리미리 계획(및 남편의 동의)하에 참석하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점심시간과 막간의 커피타임을 활용하여 상사, 동료들과 자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 있어 이렇게 이렇게 다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된 데에는 내가 퇴근 이후의 시간이 매우 금쪽같은 워킹맘이라는 사실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내가 하루 이틀 늦게 들어간다고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잘 돌보아주시고 있는 아이들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아이들의 신체적, 감정적인 상태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지고, 아이들과 잘 놀기가 어렵다. 결국 아이들과 노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고 습관이라서 계속 놀다 보면 익숙해져서 편안하게 놀 수 있는데,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놀지 않게 되면, 뜬금없이 갑자기 잘 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회사생활과 그에 따라오는 사회생활만 했던 아버지들이 은퇴 후 갑자기 가족들과 잘 지내보겠다며 두 팔 걷어붙이고 이것저것 하셔도 막상 잘 어울리기가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의 시간도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생활'과 나의 '취미생활'을 혼동하면서 발생한다. 업무의 연장선상인 사회생활은 그야말로 업무를 하는 여러 사람이 두루두루 잘 어울리기 위해서 하는, 단합이라는 목적이 있는 모임이지만, 취미생활은 그냥 내가 좋아해서,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운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테니스를 치러가거나, 골프를 치러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나는 적어도 '사회생활'이라는 명분을 들이밀지 않는다. 그건 내가 그 모임에 가는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명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 영업적 차원에서 고객과 접대골프를 치러가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나는 아직 그런 수준이 안된다ㅠ), 그냥 내가 골프가 치고 싶어서 라운딩을 나가거나, 그 외에도 친구가 보고 싶어서 만나러 가거나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나의 취미생활에 불과하다. 전체 회식에서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은 사회생활이지만, 술이 당겨서 하는 동료와의 번개는 취미생활인 것이다.


사회생활과 취미생활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보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 맞추어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회생활은 때때로 아이들을 돌보는 일보다 앞설 수 있지만, 나의 취미생활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보다 앞설 수 없다. 즉, 그야말로 회사 일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는 회사 전체 회식은 필참 하되, 내 지인들과의 맛집 탐방은 (1)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2) 대체 양육자인 남편의 동의하에 가능하다. 이때 어디까지를 사회생활로 분류하고, 어디까지를 취미생활로 분류할지는 전적으로 내 양심에 맡겨져 있다. 내가 양심껏 판단할수록, 나는 배우자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고(따라서, 추후 취미생활에 있어서도 더 쉽게 동의를 얻게 될 것이고), 한두 번 취미생활을 사회생활로 둔갑시키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배우자의 신뢰를 잃게 되어 매번 대외활동을 함에 있어 가족들의 의심과 비난을 떠안아야 하는 다소 불편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20년 전 동료들끼리 코가 삐뚤 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도 "내가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줄 알아? 이게 다 회사일의 연장이라고!!"라고 큰소리치던 여느 아버지들과 아저씨들과는 살짝 달리, 사회생활과 취미생활을 정확히 구분하고자 하는 워킹맘인 나는, 사회생활이 필요할 때는 차도녀 커리어 우먼처럼 남편에게 당당한 '통보'를, 취미생활이 필요할 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망울을 하고 안타깝고 처절하게 남편과 아이들의 동의를 구한다. 여보, 날 추워지기 전에 라운딩 몇 번 더 나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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