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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Sep 01. 2020

백 점짜리 남편과 사는 법

손님, 주문하신 남편 나왔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고른 유일한 나의 가족. 내 인생에서 내 남편의 가치는 바로 이것이다. 온통 남이라는 존재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신체적, 정신적인 울타리가 주어지며 그 안에서 성장하고, 사랑받고, 그들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가족은 혈연으로 주어지지만, 피도 단 한 방울 안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단 한 명의 가족은 오로지 내 손으로 선택한다. 나도 백세시대에서 인생의 절반도 채 경험하지 못한 그 어느 시점에, 나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그 어떤 또래의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때론 남편이 내 손으로 고른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시점에는 더더욱 그렇다. 부모님이 말다툼을 하시던 어느 날, 아빠의 단점을 늘어놓으시며 하소연하시는 엄마에게 무신경하게 "엄마가 골랐잖아"라고 이야기했다가 세상 원망스러운 눈빛과 핀잔을 잔뜩 듣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저 내가 선택을 한 기초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었다고, 예를 들면 남편이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다른 사람인 척했다고 믿는 것이 훨씬 쉬운 듯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 모두의 남편이 그렇게 연기를 잘했던 걸까? 아니면 사랑에 빠져 우리 모두가 바보 같이 속아 넘어간 걸까?


우리는 바보도 아니고, 남편은 프로 연기자도 아니다. 물론 가끔 본인의 직업, 나이, 집안 등 모든 조건을 속이고 '사기 결혼'에 이른 이야기도 신문 사회면에 나오기도 하지만, 이런 사건은 아주 드물다. 보다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백 점짜리 남편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결혼을 결심할 당시 남편에게 요구 또는 기대했던 '자질'들이 현재의 요구와 기대를 모두 포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내가 연애할 때 남편에게 주문했던 사항과 현재 내가 남편에게 주문하는 사항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어떤 여자가 아빠처럼 듬직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세상에는 둘도 없는 바위 같은 남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남자를 만났다고 치자. 그러면 정확히 본인이 원하는 남자를 만났으니 백점 남편이 되어야 하는데 살다 보면 신기하게도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 남편이 재미없다, 센스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원체부터 듬직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가 재미없고 센스가 없는 것이 잘못인가? 마치 역도 선수에게 리듬체조를 못한다며 불평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남편이 변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남편에게서 바라는 모습이 변한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연애할 때 너무 밝고 재미있어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남자가 좀 가벼워 보이고, 경솔해 보인다. 그럼 또 남자가 진중하지 못하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면 제삼자 입장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손님, 주문하신 남자는 진중한 남자가 아니었는데요?"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최초에 주문(?)을 넣는 시기에 원하는 모든 조건을 모두 포함해서 주문을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할 때부터 듬직하고 책임감 있으면서도, 밝고 재미있으며, 센스가 없거나, 경솔해 보이지 않는 그런 남자를 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미래의 남편에게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스스로 "모두" 찾기도 힘들뿐더러, 당시에 원했더라도 살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 조건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애당초 완벽한 조건의 남편감을 주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백 점짜리 남편의 조건 리스트를 여차저차 완성한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또는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함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떤 해맑은 남자들이 이상형인 여성에 대해서 언급할 때, 청순한데 귀엽고 섹시하면서 당당한 커리어 우먼인데 우리 엄마한테 잘하는 그런 여자를 언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는 백점 자리 남편의 성취 여부는 결혼을 앞두고 내가 남편에게 냈었고, 남편이 답이었던 그 문제에 달려있다. 만약 연애하고 결혼을 결심할 그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남편이 그때 내가 냈던 문제를 현재까지 성실히 풀어주고 있다면 다른 불만사항은 나의 개인적인 선택과정에서 비롯된 문제이므로 눈 딱 감고 백점을 줘야 한다. 결혼 당시 당신의 남편에 대한 기대했던 바와 결혼한 이후의 남편에 기대하는 바가 달라졌다고 해서 남편 본인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현재 남편의 점수가 낮아져야 한다면 뭔가 불공평하지 않는가(심지어 내 생각의 변화가 클수록 남편이 점수가 더 낮아진다면 더더욱 불공평하다).


내가 연애할 때 우리 남편에게 꽂혔던 부분은 운동을 좋아하는 173센티의 커다랗고 씩씩한 여자 친구를 보호하고 배려했던 그 마음, 그리고 함께 있을 때 편안한 말동무가 되어주는 그 모습이었다. 결혼하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남편은 나의 따뜻한 보호자이자 수다쟁이 친구의 모습을 변함없이 유지해주고 있으므로 아낌없이 백점을 보낸다. 당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약간의(?) 단점은 내가 당시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니 남편 잘못은 아닌 것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내 쪽의 잘못도 있으니 이를 어떻게  극복해서 함께 살아갈지는 부부 공동의 노력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내가 믿고 투자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유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따뜻한 남자에게 투자하고 차도남의 심쿵 모멘트나 블링블링 아이돌급 애교를 기대하는 건 세상 이치에 어긋난다. 가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에게 그런 일도 일어 날 수 있겠지만 로또급의 확률이다. 그래도 너무 억울할 필요는 없다. 차도남의 심쿵 모멘트나 블링블링 아이돌급 애교는 언제든지 손가락만 까딱하면 티브이 화면이나 휴대폰 액정 위에서 만날 수 있으니.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포기하고, 20년 넘게 찾아 헤맸던 나만의 쉼터 같은 남자를 얻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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