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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Sep 14. 2020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

엄마들이여~ 좁은 길로 가라!!!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어려서부터 착한 어린이, 성실한 학생, 능력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된다면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어쩌면 무엇이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착한 어린이는 엄마 말씀을 잘 들으면 되고, 성실한 학생은 학업에 충실하면 되며, 능력 있는 변호사는 고객의 법적인 문제에 대한 최선의 솔류션을 제공하는 것으로 달성이 가능한데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엄마 5년 차에 이른 지금까지도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부모님 세대에게 좋은 엄마란, 아이를 깨끗한 환경에서 좋은 음식을 먹여 무럭무럭 키우는 것이 중요했던 듯하다.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아이 키우는 집이 왜 이러냐, 아이가 먹는 음식이 왜 이러냐라는 소리부터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을 보면,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깨끗하게 빨아서 다려놓은 옷을 입히고, 부족함 없이 각종 고기, 생선, 야채 반찬을 맛있게 차려서 매끼 먹여야만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반면, 우리 딸들이 생각하는 좋은 엄마란, 항상 옆에 있어주고, 티브이를 원하는 만큼 보여주고, 원할 때마다 같이 숨바꼭질을 해주며, 시크릿 쥬쥬 장난감을 잘 사 주는 엄마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허락해주거나 이뤄줄 때, 나는 딸들로부터 "엄마 좋아!!", "엄마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다. 솔직히 이런 찬사를 받을 때면, 찬사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찬사를 외치는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예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든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 부족한 워킹맘으로써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그저 좋은 시간만 보내고 싶어서 아주 손쉽게 오케이를 외치거나, 무언가를 안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는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좋은 음식을 차려놓은 다음에, 애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미 그것만 하기도 벅차다는 느낌이 드는데, 고심 끝에 내가 내린 답변은 "아니다"였다. 그렇게 하면 제3자적 시선에서 좋은 엄마라는 칭찬을 가끔 들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좋은 엄마'의 길로 가기에는 여전히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는 엄마의 '존재의 의미', 엄마의 '역할'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아이를 만들어 낳았다. 이렇게 말하니 나 스스로가 무척 위대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나와는 또 다른 인격체이다. 비록 유전적으로 나와 흡사 닮아있지만,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본인만의 인생을 살아간다. 현재는 나의 비호하에 있지만 점차 본인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 여러 경험을 하고,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본인의 인생을 결정해가며 살아나가게 될 것이며, 언젠가는 나로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독립하게 될 것이다. 즉, 한마디로 아이는 나와의 접점은 있지만 나 자신은 아니며, 아이는 멈춰있지 않고 본인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나가야만 한다.  


여기서 나는 2가지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첫째는 아이는 결코 엄마 본인과 같을 수 없으며, 엄마는 어디까지나 아이의 보조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의 기준에서 좋은 것을 아무리 아이에게 안겨봤자 아이에게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예를 들면, 나는 운동을 무척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썩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이건 나에게는 매우 슬픈 사실이다). 아이들은 운동경기를 보러 가는 것보다는 시크릿 쥬쥬 뮤지컬을 보러 가거나, 놀이공원에 가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또한,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딸들이 변호사가 되었을 때 행복하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따라서 엄마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보조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내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좋은 보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의 인생의 주인인 아이 본인에 대해 잘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는 아이를 잘 관찰해야 하는데, 아이의 옆에서 아이의 상태와 감정을 물어봐주고 살피며, 아이의 본성을 파악해야 한다. 아이의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보조자가 될 수 없다.


둘째는, 아이는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가 항상 아이 곁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언젠가 아이 혼자서 세상에 나아갈 때 잘 적응할 수 있는 스킬을 탑재시켜 주어야 한다. 세상을 살아 가는데 필요한 스킬은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여러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 필요한 규범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어느 순간 아이가 사회에서 그런 규범들의 이행을 요구받을 때,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세상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본인만의 인생을 개척할 아이에게 여러 가지 팁을 전수해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조언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지만, 엄마는 아이의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최적화된 팁을 제공할 수 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에게는 용기를, 욕심이 많은 아이에게는 배려와 양보를 가르치는 식이다. 이렇게 저렇게 아이의 좋은 점을 키워주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본인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전인격체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성실히 실행하는 것은 엄마에게 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잘 관찰한다는 것은, 아이 곁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히 시간만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벌레가 무섭다는 아이에게 괜찮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등 떠미는 것보다는, 왜 벌레가 무서운지, 어떤 면이 무서운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덜 무서울 지를 물어봐주어야 한다. 또한 아이를 사회생활이 가능한 전인격체로 키운다는 것 역시 여러 세상의 이치를 설명, 교육, 학습시켜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를 위해서는 아이에게, 좋게 말하면 수많은 가르침을, 나쁘게 말하면 수많은 잔소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면 나는 기꺼이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이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리라고. 티브이를 켜주고 아이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어주면, '엄마 최고!'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좋은 엄마의 길로 갈 수 없음을 알기에 굳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공원에 나서며 오늘 날씨가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길 가다 마주친 현수막을 보며 저건 "가"라고, "가위"할 때 "가"이고, "가수"할 때 "가"라고 혹시나 알아들을까싶어 열심히 외쳐본다. 가끔은 음식점에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고 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켠이 아려오지만, 이게 바로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 본다. 그러고 나서 혹시라도 아직 '좋은 엄마' 지망생에 불과한 내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하는 여러 행동들에 스텝이 꼬이거나, 부작용이 발생해서 아이가 엄마의 진심을 오해라도 할까 봐 잠결에 눈을 깜박깜박하는 아이 귀에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엄마가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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