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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때

이렇게 하면 엄마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by 워킹맘

부모 자식 관계에도 레버리지가 존재한다. 엄마의 사랑은 무궁하지만 엄마의 시간은 제약이 있다 보니 우리 집 삼 남매는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늘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이들 사이에 경쟁이 붙는 일도 빈번하다. 내가 야근을 하면 그림과 편지를 준비해 내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식사를 할 때에도 엄마 옆에 앉기 위해 투닥거린다던지 차량을 운영하는 학원임에도 엄마가 꼭 데리러 와달라고 한 다든지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이런 애타는 노력을 보면 황송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묘한 감정이 든다.


최근에는 남편과 막내아들이 함께 자면서, 엄마 침대에 한자리가 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딸들이 서로 엄마와 자겠다며 다투다 달력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서로 다른 색의 펜을 들고 당사자(엄마)의 동의도 없이 서로 엄마랑 같이 자는 날을 표시하며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사뭇 진지한 모습에 귀엽기도 하고, 살짝 어이도 없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자는 것이 나도 싫지 않아서 알겠다고 했다. 그날부터 아이들은 합의된 일정에 따라 내 침대에서 나와 같이 잤다.


이때까지는 좋았는데, 며칠 외부일정을 퇴근이 늦어지니 해당 일에 나와 자기로 했으나 혼자서 내 침대에서 자게 된 아이가 억울함을 토로하며 추가 일수 배정을 요구했다. 변호사 엄마가 보기에는 제법 합리적인 제안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그 불만이 나에게 떨어지니 매우 억울했다. 나는 합의한 적도 없는 일정 때문에 저녁일정을 모두 접을 수도 없고 울면서 "난 오늘 엄마랑 자는 날인데 왜 늦게 오냐"라고 따지는 아이를 혼낼 수도 얼를 수도 없어 나도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오늘 아침에도 강북 지역에서 외부 발표가 있어서 일찍 나가는데 발표준비가 미흡하여 택시로 이동을 하며 추가 준비를 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려면 평소 내가 출근길에 차로 데려다주는 둘째 딸을 데려다 주기 어려울 듯하여 둘째에게 오늘은 걸어서 학교에 가라고 했다(도보 10분 거리이다). 그 순간 우리 둘째가 안 떨어지려고 나를 붙잡더니 택시가 와서 보내려고 하자 펑펑 울면서 걸어가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울일인가'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자니 맘이 짠했다.


발표를 마친 후에도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은 왜 별것 아닌 일에 이토록 억울해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인지. 내가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장거리 출장을 갈 때는 크게 서운해하지 않는다), 매일 함께하는 일을 하루만 사정이 있어 쉬자는 것인데 왜 엉엉 우는 것인지. 몇 시간 고민 끝에 이러한 사소한 행위들로 아이들은 늘 멀리 있는 엄마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문자 'T'인 엄마로서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 아이들의 행동이 몇 개 떠올랐다.


첫째는 내가 아침식사를 차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간단히 볶음밥이나 파스타도 해주고 생지를 사뒀다 빵을 구워서 주기도 하는데, 눈만 뜨면 뛰어와서 오늘은 머 해줄 것인지 물어보고, 내가 미적거리고 있으면 쉴 새 없이 나를 재촉한다. 아침에 일정이 있어 못 차려주는 날은 할머니집에서 충분히 아침을 먹을 수 있지만 대단한 서운함을 표시한다. 우리 첫째는 엄마가 아침을 차려주는 것으로 애정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는 오늘 알게 된 것처럼 아침에 내가 데려다주는 순간을 온전히 엄마의 애정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먼저 등교하는 언니나 동생의 방해 없이 편하게 엄마와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둘째는 이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엄마와 자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잠들기 전까지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자매 없이 오롯이 엄마가 내 눈을 바라보고 내 하루를 궁금해하고 엄마의 하루를 설명해 주는 그 시간을 통해 비록 하루 종일 내 곁에 없었던 엄마지만, 나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이런 사소한 행위에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사실 엄마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러한 행위들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제공해주고 싶지만 워킹맘이라는 특성상 아니면 나의 직업의 특성상 늘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번 내가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하다 못해 아이들이 서운해할 때 '넌 왜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유난이니?'라고 질책하기보다는, '엄마와 함께하지 못해 서운하구나'라고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은 행위에 목을 매는 것이 엄마를 괴롭히기 위함이거나 성격이 유별나서가 아닌, 그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방식으로 엄마의 사랑을 표현해 줌으로써 아이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부부사이에도 사랑을 표현해야만 사랑이 오고 가듯이 아이와의 관계에 있어도 사랑은 상태가 아닌 행위인듯하다. 아이가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있는 힘을 다해 확인해 주어야겠다. 어쩌면 이렇게 나의 사랑을 갈구하는 행위조차 그리워지는 시기도, 곧 아이들이 자라나면 금방 올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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