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거리의 균형
나는 원래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만 해도
점심시간이면 매일 다른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웠고,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게 내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내가 웃어도, 상대는 정색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색한 미소로 급히 상황을 수습하곤 했다.
또, 늘 웃고 있다 보니
나를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했다.
‘항상 웃는 얼굴이 꼭 좋은 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에서
이성적인 말투와 표정으로 대한다.
감정보다 태도를 관리하고,
친근함보다 거리 두기를 택한다.
그 덕에 불필요한 상처는 줄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조용하고 무게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
신비주의 선생님쯤으로.
가끔, 마음이 맞는 몇몇 동료와
퇴근 후 가볍게 술 한잔을 나눌 때면
“선생님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는 분인 줄 몰랐어요.”
라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농담 몇 마디 주고받으며
잠깐은 교사라는 틀을 벗어나 ‘진짜 나’로 돌아간다.
하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
조용히 마음의 단추를 잠근다.
진심을 너무 쉽게 꺼내놓으면
언젠가 또 상처받을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대할 땐 다르다.
그땐 다시 원래의 내가 된다.
함께 웃고, 장난치고, 농담도 건넨다.
때론 거칠지만, 그 안엔 진심이 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나를 ‘편한 선생님’이라 부른다.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아도
손을 흔들며 “선생님~!” 하고 부른다.
그게 좋다.
그게 내가 바라는 관계의 온도다.
어느 동료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교사들한테는 냉정한데
학생들한텐 참 따뜻하시네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다음 학교에서는
이 둘을 조금 섞어보려 한다.
이성의 거리와 감정의 온도를 함께 지닌 사람.
진심은 그대로 두되,
웃음은 조금 더 나눠보려 한다.
다시, 핵인싸 린치핀으로 돌아가보자.
이번엔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이제는 누군가에게 맞추기보다,
내 안의 중심으로 관계하고 싶다.”
오늘도 몸과 마음을 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