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과로사 한다.
웃자고 한 말인데,
요즘엔 웃기지가 않는다.
얼마 전
친한 형이랑 오랜만에 진탕 마셨다.
내 적정량은
1병 반에서 많아야 2병.
그날은
3병을 넘겼다.
다음 날,
몸이 아니라
머리가 먼저 후회했다.
오늘은
졸업한 제자들과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숙취도 남아 있었고,
막 졸업한 녀석들과의 어색함도 걱정됐다.
그래서
밥만 먹고 헤어지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약속 전부터 뭔가 계속 꼬였다.
차로 온다더니 버스로 온다고 하고,
약속 시간은 한 시간 밀리고,
미리 정해 둔 메뉴도 거부했다.
그때
학교에서는 못 하던 욕을
시원하게 한 번 해줬다.
그래도
두어 번 더 시도하는 놈을 데리고
국밥집으로 갔다.
국밥 한 그릇 먹이고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술이 한 병, 두 병 늘어나더니
어느새
이 개념 없는 놈들이
다시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2차로 가서
술은 네 병, 다섯 병.
내 고삐도 풀릴 즈음,
술을 거의 못 마시던 한 놈이
정신을 차렸다.
“쌤, 여기서 마무리하죠.”
그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오는 길,
혹시 내가 너무 거칠었나 싶어
한 놈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무덤덤하게 받더니
이런 말을 한다.
“쌤 집에 재워주면 안 돼요?”
내가 끊기도 전에
전화를 먼저 끊더라.
얼마 전에는
내 은사님께도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몇 년 만에,
용기 내서.
반가워하시긴 했지만
어딘가 형식적인 말들이 오가고,
“언제 한번 놀러 와”라는 말로
통화는 끝났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이 녀석들이 어떤 놈들인지,
내가 좋은 선생인지,
나도 좋은 제자였는지.
개념 없어 보이다가도
좋아 보이고,
정이 가다가도
또 실망하고.
만나면 즐겁고,
술이 들어가면
괜히 더 좋아진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
또 다른 제자와 연락이 닿아
다음을 기약한다.
교사 경력이 늘어날수록
왠지
빚이 쌓이는 기분이다.
그 시절에
내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들을,
졸업 뒤에 밥이나 커피, 술로
조금이나마
갚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는
어린 친구들에게
고맙다.
오늘은
술을 먹고 집에 오자마자
일기를 쓴다.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아직 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