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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트옙스키 Jul 17. 2021

감성 차박? 아니, 그냥 개빡


 퍼스널 스페이스를 존중해 주세요! 하던 우리, 이젠 퍼스널 스페이스에만 계세요! 시대를 살고 있다. 벌집의 각방처럼 따로, 따로, 따로 먹고 자고 놀아야 하는 우리. 그런 우리들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자동차다. 자가용 보유자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차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기름 넣어주면 어디든 가고, 적당히 방음도 되며, 에어컨과 히터가 나오고 의자를 젖히면 잠도 잘 수 있다. 자동차엔 기능이 참 많구나, 새삼 느낀 사람들, 이젠 차에서 놀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메인 테마로 잡고 번지기 시작하는 수많은 여가 방법들. 그 중 가장 유행하는 것은 아마도 차박일 것이다. 차량에 최소한의 숙식을 해결할만한 공간을 마련하여 그 안에서 캠핑을 즐기는 새로운 여행 방식이다. 초보들은 트렁크만 넓게 비워서 잠을 자기도 하고, 고수들은 온갖 살림살이를 차에 끼워넣고 휘황찬란하게 차박을 즐기기도 한다. 색다른 문화이다. 집을 하나 통째로 끌고다니는 느낌도 나고, 아니, 무엇보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차를 타고 경관 좋은 곳으로 가 아무렇게나 세우고, 센치하게 풍경을 즐기며 사색에 잠기는 것. 자동적으로 떠오르지 않는가. 일몰 앞으로 펼쳐진 시원한 숲 혹은 바다, 빈티지한 지프, 법랑 컵 안에 담긴 진한 블랙 커피 한 잔. 그리고 그 중심엔 내가. 이 낭만을 거부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당신의 낭만은 어디에 있는가? 푸른 숲? 넓은 들판? 파도 소리 들리는 해변이나 운치 있는 강가? 아마 이 선택지들을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누가 테헤란로 한복판에서 차박을 즐기고 싶어 하겠는가.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고, 이미 차박에는 성지까지 존재한다. 어느 곳이 경관이 좋다, 어느 곳이 차박에 용이하다, 차박에 빠진 '차박족'들은 알아서 이러한 정보들을 공유한다. 자연스레 스팟이 생기고, 스팟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차박은 오토캠핑과 달리 캠핑장 대여료를 낼 필요도, 무조건 그 안에서만 야영을 해야할 이유도 없다. 아무곳이나 원한다면 차박 장소로 삼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낭만 밖 목소리는 다르다. 제발 차박 좀 오지 말아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동네 주민들이다. 

부산 가덕도의 한 마을. 차박과 야영을 금지하다는 안내가 무색하게 주말 직후 곳곳에 누군가 버리고간 쓰레기가 쌓여있다.              / kbs뉴스 정민규 기자 기사 사진

 '차박족'들이 다녀간 후, 자리엔 어마어마한 쓰레기만 남는다. 잘 분류해 정해진 장소에만 버리느냐, 당연히 아니다. 일부 매너리스 차박족들의 쓰레기 투기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자기가 먹은 것도 아무데나 버리고, 쓴 것도 아무데나 버리고, 심지어 집에서 가져와서도 버린다. 잘 놀고 다 버린 후 그대로 훌훌 내빼버리면 그만. 남은 쓰레기와 마주하는 건 오로지 동네 주민들 뿐이다.

 주워서 분류해서 버려도 다시 차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나가면 또 쓰레기가 생기고. 주워서 버리면 또 차들이 들어오고. 먹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네! 엄마들의 단골 멘트가 떠오른다. 놀고 가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문제는, 이 주민들은 관광객 엄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오더니 우리 동네에서 야영을 했다. 그리고 쓰레기를 왕창 버려놓고 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여러명이다. 상상해보자. 당신의 아파트 단지에 갑자기 차 수십대가 오더니 제멋대로 야영을 하는 것이다. 그 후에 남은 것은 엄청난 쓰레기. 그 꼴을 안 보려면 당신이 치우는 수밖엔 없다. 얼마나 혈압이 오르는가.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우리한테만 관광지이지, 여기 사는 사람들에겐 집이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망치를 들고 차를 때리러 다니지 않는 주민들이 참 선량하게 느껴진다. 물론 모든 차박족들이 이렇다는 것이 아니다. 배려심 있게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건 결국 그 반대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아닌가. 차박이란 생겨난지 오래되지 않은 문화이고, 언제나 새로운 것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이 시행착오의 과정이 특정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사회가 빨리 나서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즐기는 이들과 그들의 유흥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사이의 절충안을 내야 한다. 금방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보호가 먼저 아니겠는가. 못 놀아서 짜증나는 것과 쓰레기 치우다 앓아눕는 건 엄연히 무게가 다른 문제이다. 만약 자신이 매너 있게 차박을 즐길 자신이 없다면, 자기 동네 주차장에서만 즐기도록 하자. 당신의 낭만이 누군가에겐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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