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미정 Dec 02. 2022

엄마 옆에 있으면 따뜻해서

아빠는 안 되겠니

"엄마 옆에 있으면 따뜻해서"


새벽에 또 안방 침대로 건너와 아빠를 몰아내고 단잠을 자고 일어난 수아의 말이었다. 수아는 더 어릴 때부터 잠자리에서는 항상 나를 찾았다. 자상한 아빠와 껌딱지처럼 붙어서 지내다가도 밤에는 늘 나였다. 잠에 무척 늦게 드는 아이어서 늘 할 일이 많아 분주했던 나는 그 황금시간에 캄캄한 방에 누워 한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면 최대한 소리 없이 조심히 빠져나와 원고를 쓰거나 대학원 과제를 하고 논문을 다. 하지만 아이는 조금 있다가 깨어나서 엄마가 없으면 또 엄~~마~~를 구슬프게 불러대곤 했다. 오 제발... 깊은 한 숨을 쉬며 아이 옆으로 돌아갔다.


폴란드에 온 후 가까스로 수면 분리를 했다. 수아가 여섯 살, 주아가 네 살이니 이제 둘이 따로 재워도 되겠다 싶었다. 그전까지 더블 침대에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팔다리도 제대로 못 뻗고 불편하게 자왔다. 환경도 바뀐 김에 두 아이가 원하는 카펫과 이불을 사고 공주방처럼 아늑하게 꾸며 수면 분리를 시도했다. 이전부터 워낙 세뇌를 시켜왔던 터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자 새벽에 깨서 자지러지게 울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리 와~~~!!!" 그 소리에 나는 새벽에 벌떡 깨서 아이에게 달려가고, 이제는 각각 싱글 침대에서 자고 있어서, 좁은 싱글 침대에 몸을 구겨 넣고 아침을 맞았다. 휴.


새벽마다 울며 불며 "엄마 이리 와~~!!"라고 소리를 질러대니 잠에 취해 있는 나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안 가고 버텨본다. 그러면 그 소리는 더 큰 괴성으로 바뀐다. "수아가 이리 와!" "싫어 엄마가 이리 와~!!" 결국 내가 가서 수아를 안고 안방으로 왔다. 남편과 셋이긴 해도 싱글 침대에서 둘이 자는 것보다는 킹 사이즈에서 셋이 자는 것이 나았다. 그 후로 수아는 새벽에 깨면 울지 않고 그냥 베개를 들고 옆에 와서 잤다. 새벽에 깨우지 않고 와준 것만으로도 기특해서 "수아 안 울고 엄마 옆에 왔네! 잘했어."하고 칭찬해줬더니 매일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니가 오니 동생 주아도 깨면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온다. 어쩔 땐 먼저 깬 놈이 다른 놈을 깨워 같이 온다. 그렇게 넷이 불편하게 끼어 누워있다가 아빠가 나가거나, 내가 나와서 애들 에 가서 잔다. 이건 무슨 난장판인가. 수면 분리가 무색해졌다.


여긴 내 침대라고...

아직도 아침까지 편히 한 번 자는 게 이렇게 힘이 드는구나 싶다가도, 굳이 아이들이 혼자 씩씩하게 자도록 재촉하거나 밀어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해주는데 수아는 하루도 빠짐없이, "무서운 꿈 꾸지 않게 해 주시고, 엄마 잃어버리는 꿈 꾸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엄마 잃어버리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다. 아이에게 그게 얼마나 무서운 꿈일까. 상담심리학을 공부했던 나는 '수아가 어릴 때 충분히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불안을 느끼는 걸까. 잠들자마자 내가 사라졌던 게 이 아이를 불안하게 했던 걸까'하며 엄마 특유의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했다. 그래서 수면 분리를 시도하던 초기에는 책을 읽고 자장가를 부르고 기도를 해주고 방을 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에 푹 들 때까지 계속 곁에 있어주게 되었다.


오늘 새벽에도 두 놈 다 새벽에 우리 침대로 왔고, 아빠는 밀려나 아이방으로 갔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수아를 안아주며 "오구, 오늘도 엄마 옆에 와서 잤네~ 새벽에 눈 떠서 엄마 없으면 무서워?"하고 어제 육아서에서 본 대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 애썼다. 그랬더니 수아는


"아니, 엄마 옆에 있으면 따뜻해서"


라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에게, 고작? 잠에서 깨면 엄청나게 무서워서, 괴물 나오는 꿈을 꿔서, 엄마 잃어버리는 꿈을 꿔서 그 캄캄한 새벽에 방을 가로질러 오는 줄 알았더니... 엄마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였구나. 한편으로 안심이 됐다. 아이가 공포 속에 잠을 깨는 것이 아니어서. 나의 따뜻함을 그리워서 해서 와준 거라니 고맙기까지 했다. 그래. 다들 말하듯, 이제 끼고 잘 날도 얼마 안 남았겠지. 조금 더 지나면 자기 방문 닫고 나오지도 않겠지. 그때면 베개 들고 와서 폭 안기는 보송보송한 네가 그립겠지. 너무 힘들어서 빨리 수면 분리를 시도하려는 냉정한 엄마에게 '따뜻하다' 말해주니 미안하고 부끄럽고 고맙다. 내일 아침에는 이 말을 해주어야지.


"엄마 이불속으로 들어와 줘서, 엄마 옆을 따뜻하게 해 줘서 고마워 수아야."


그러다 나는 언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냐만은..

매거진의 이전글 책벌레가 책을 못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