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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Dec 03. 2022

글쓰기에 필요한 두 가지

이것만 있으면 매일 쓸 수 있다

요즘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쓸수록 재미있고, 처음엔 막막하지만 쓰다 보면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드러난다. 9월부터 매일 글을 쓴 덕분에 봄, 여름에 수없이 유럽의 국경을 넘나들었던 여행에서 스치듯 깨달았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다시 생생히 마음에 새기고 글로, 브런치 북으로 남길 수 있었다.


[브런치북] 엄마도 여행 좀 하겠습니다 (brunch.co.kr)


아무리 글쓰기를 좋아해도 이것이 백지 위에 뭔가 창조해내야 하는 일이어서 그렇게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데, 나는 두 가지 덕분에 제법 지켜낼 수 있었다.



첫째는 글쓰기 출근시간이다.

두 번째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평생 작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작가 수업에 관한 책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수많은 작가들의 조언을 통해 내린 결론은 이렇다. 매일 쓰는 사람이 작가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서가 아니라, 나처럼 한 두 권의 책의 저자가 되어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속 쓴다면 그것이 바로 작가다. 나는 두 권의 책을 내고도 어디 가서 스스로 '작가예요'라고 말하지는 못했는데, 매일매일 일정 시간에, 하루 시간의 가장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한다면 스스럼없이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스스로 작가의 출근시간을 아침 9시로 정했다.

아이들이 7시 반쯤 스쿨버스를 타고 가면, 성경 한 장을 읽고, 출근한 남편과 등원한 아이들을 위해 잠시 기도하고, 홀로 고요히 아침을 먹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집 정리를 하고 나면 9시쯤이 된다. 그래서 8시 55분에 글쓰기 알람을 맞춰놓고, 9시면 내 서재 책상에 앉을 수 있도록 했다. 거창한 글을 써내려 하면 분명 방어기제가 생겨 이런저런 핑계로 한 자도 못 쓸 수 있으니, '무엇이든 좋으니 딱 15분만!'이라는 가벼운 규칙을 정했다. 실제로 무언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코칭 방법으로, 매일 10분, 15분 등으로 시작하는 '스몰 스탭'이 자주 쓰인다. 내가 코칭할 때 자주 했던 방법인데 나에게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절대 15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금만 쓰자,라고 시작해도 쓰다 보면 자세하게 쓰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하고 싶은 메시지가 생기게 된다. 다 쓰고 나면 다시 읽으며 흐름에 맡게, 입에 붙게 조금씩 수정을 하게 되고 맞춤법 검사도 하게 된다. 그리고 찍어두었던 사진까지 곁들여 브런치에 발행한다. 그러고 나서 시계를 보면 점심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러면 작가로서 오늘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뿌듯한 마음에 기분 좋게 점심을 먹을 수가 있다. 그리고 오후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놀 수 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간의 여행담을 모두 털었고, 육아 이야기도 썼고, 요즘 춥고 일찍 어두워서 매일 집콕하며 이렇다 할 것 없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와버렸다. 오 이런.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하나 봐! 쓸 것이 없을 땐 그냥 비공개용 글을 쓴다. '오늘은 뭘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2시간이나 미루다 이제야 앉았다'로 시작해 그냥 주저리주저리 쓴다. 15분만 채우고 그만 쓴다. 발행하지 않고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다. 그래도 그날의 할 일은 다 한 것이고 약속을 지킨 것이다.


때론 주저리주저리 글이 나를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어느 날은 의식의 흐름대로 이것저것 써 내려가다가 '유튜브 재개를 위해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만들고 오늘 할 일과 메일 보내야 할 것 등을 착착 정리하며 실행력이 가해지기도 했다. 글로 쓰기 전에는 머릿속에 막연한 숙제로만 남아있던 일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다 보니 그것이 정리되었다. 나의 무의식은 그것을 빨리 정리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니 글감을 계획해서 쓰지 않아도 좋다. 나는 오히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비공개용 막글을 자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줄리아 카메론이 <아티스트 웨이>에서 제시한 '모닝 페이지'와 같은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출근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한다.

매일 출근하는 조직생활이 싫어 방송국을 퇴사한 나다. 글쓰기까지 출근이라며 스트레스를 줬다가는 오래가지 못할 터. 이것저것 하다 9시가 좀 넘어가면, '에구, 오늘은 좀 지각이네'하고 넘긴다. 회사 다닐 때도 꽃 몇 분씩 지각하곤 했다. 몸이 아프면 10시로 바꾸거나 오후에 쓰기도 한다. 난 프리랜서니까 시간에 자유로울 수 있다. 아이가 아파 집에 있으면 그날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주말은 일하지 않는다. 그 정도의 적당한 융통성을 가지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적절한 루틴 안에서 글을 쓸 수 있다. 나 즐겁자고 쓰는 글인데 글쓰기 루틴에 집착해서 하루를 망친다면 그건 앞뒤가 바뀐 것이다.




글쓰기에 필요한 것 두 번째는, 한 명의 애독자다.

아,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한 명으로도 충분히 힘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요즘처럼 다들 바쁜 세상에서는 핸드폰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글을 찬찬히 읽어주기 쉽지 않다. 심지어 내 글은 A4 한 페이지가 넘으니 더더욱. 그래서 사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구독자 분들이 라이킷을 눌러주시면 그것이 참 신기하고 정말 감사하게 느껴진다(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그 하트 외에 내게 더 큰 힘을 불어넣어 주는 건 "강 작가님~ 팬이에요!"라며 모든 글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는 우리 엄마다. 브런치의 글을 지인들에게 보내지 않지만, 유일하게 우리 가족 단톡방에는 올린다. 일본에 있는 남동생, 스위스에 있는 언니, 한국에 있는 엄마가 함께 있는 방이다. 멀리 떨어져 지내니 내가 뭘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올린다. 물론 이렇게 자주 글을 올리면 바쁜 형제자매들도 매번 읽어주긴 쉽지 않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글을 읽고 나에게 개인 톡을 보낸다. 그건 엄마로서의 메시지가 아니라 애독자로서의 메시지다. 그래서 항상 "작가님~"하면서 존댓말로 멋진 피드백을 보내준다.


"작가님~ 크리스마스가 준 어둠의 선물 잘 읽었어요.

아름다운 글에 향기로운 뱅쇼 향이 넘치네요!

그곳에 가 있는 현장감이 100%! 아름답고 포근하고 행복한 겨울입니다."


"글이 매끄럽고 꾸밈이나 가식이 없네요. 마지막 결론이 멋져요.

모든 독자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멋진 모습이 아름다워요."


"작가님~ 멋진 글 잘 읽었어요.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엄마의 마음이 따스하게 느껴지네요!"


이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받고 나면 내 글을 다시 읽고 싶어 진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 처음 썼을 때보다 내 글이 훨씬 더 잘 쓴 것처럼 느껴진다. 마법 같은 힘이다. 어쩔 때는. 글을 올렸는데 반응이 없으면 기운이 빠져있다가가, 한참 후에 칭찬의 피드백이 오면 그제야 다시 살아나서 내 글을 또 읽어보곤 한다. "글 읽어주고 무한 칭찬해줘서 감사해요, 애독자님! 더 유명한 작가가 되어서 모두 엄마의 덕분으로 공을 돌릴게!"라고 답장하며 하트를 함께 날린다. (남편도 독자이긴 하나 남의 편에서 날카로운 비평을 해대서 내가 단단해질 때까지 잠시 귀를 닫기로 했다)


이렇게 두 가지, 나의 서재로 출근하는 아침 9시 글쓰기 시간, 그리고 무한 칭찬을 해주는 애독자 한 명, 이것이 요즘 나를 매일 쓰게 한다. 쓸수록 재미있고, 쓸수록 나를 알게 되고, 쓸수로 나답게 살게 된다. 이 글을 읽고 또 나의 애독자가 어떤 피드백을 해줄지 벌써 기대를 하고 있다. 그 힘으로 나는 또 내일 아침 9시에 이 자리에 출근할 것이다.

                     



(커버사진 : shero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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