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오셨던 덕분에 여행을 떠나 기대 이상으로 멋졌던 크라쿠프를 볼 수 있었고, 가을의 절정과 어우러진 풍경을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폴란드에 살면서도 마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새롭고,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어제는 기차를 타고 시비드니차에 갔다. 남편이 일찍 끝난다고 해서 아이들과 기차를 타고 그의 회사 근처인 시비드니차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함께 돌아왔다. 어둑어둑 해질 저녁. 비가 올 것처럼 수분을 머금고 있는 공기. 저녁에 밝혀진 거리의 주황빛 조명. 광장의 예스러운 건물들과 그 뒤로 보이는 높은 성당. 이 모든 것이 어울려서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낭만적인 유럽의 밤거리를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보채는 바람에 한 바퀴도 둘러보지 못하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는 길까지 아주 잠깐의 산책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할 만큼 마음에 새겨졌다.
이곳이 정말 좋다. 거의 매일, 한국에 돌아가면 이곳이 얼마나 그리울까, 하는 생각 혹은 걱정을 한다. 아직 돌아가려면 멀었는데 이런 생각을 매일 한다는 것은, 내가 이곳을 정말 좋아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옛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당과 교회, 고풍스러운 건물들, 공원과 거리 어디서나 높게 뻗은 나무들에게서 아주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점점 모던해지는 한국의 정취보다 이곳의 정취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낯선 곳이 더 평화롭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참 신기하다.
3년을 약속하고 왔는데 벌써 첫 번째 해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2년 후, 3년 후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반가울까. 아니면 여기서 더 오래 있고 싶어 할까. 혹은 더 있게 될까. 그때 나는 이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떤 추억을 남기고, 어떤 여행을 하고, 어떤 글을 글을 쓰게 될까.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 있을까. 한 순간 한 순간 소중히 여기고 싶다. 지금 나의 서재 창문에서 보이는 연두, 노랑, 주황, 빨강, 자주가 어우러져있는 가을나무들, 창마다 하얀 레이스 커튼을 단 빨간 지붕의 앞집. 빠르게 구름이 지나가며 수시로 변하는 하늘.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매일 하염없이 바라본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나를 나답게, 나로 살게 해주는 이곳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