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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Jun 09. 2023

오스트리아 빈에서 마주친 마라톤 대회

우연은 없다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것은 내가 매일 달리기 시작한 지 19일째였다.

<마녀체력>과 <30일 5분 달리기> 책을 읽고, 그래 오늘부터 달리자 해서 4월부터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막 화창한 봄이 시작되어 여행을 시작하는 시기와 겹쳤고, 여행지에서도 달리기를 하다가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아름다운 유럽 여행지에서 달리기라니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빈에서 3일을 보내며 사흘동안 아침과 밤거리를 달리고 돌아가는 날이었다. 홀로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 중이었는데 차를 주차해 둔 곳이 한참 멀리 떨어진 공원에 있어서 짐은 호텔에 맡겨두고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호프브르크 왕궁과 궁전 정원을 둘러본 후 다시 쌍둥이 유모차를 힘껏 밀며 1.9km 떨어져 있는 공원 주차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건너려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대로에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도로는 통제되어 있었고 경찰들도 많았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파란 티셔츠를 입고 달리고 있었다. 어머 이건, 마. 라. 톤!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해서 평생 러너가 되겠다는 야심 찬 꿈을 가진 초보 러너에게 펼쳐진 꿈같은 풍경이었다.


빈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 국립오페라극장 앞


이 유명한 관광도시에서 도로에 멈춰서 있는 수많은 인파가 다 이들의 가족은 아닐 것인데, 마치 가족을 응원하듯 모두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뜨겁게 이들을 응원하고 있었고, 손이라도 들어주면 마라톤 선수들은 그에 화답하듯 손을 들어 보이며 달렸다. 그런 모습도 정말 울컥했는데 계속 서서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울컥했다. 나는 여행길에 쌍둥이 유모차를 밀며, 애들이 이렇게나 컸는데(7살, 5살) 내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밀고 다녀야 하는 건지 속으로 늘 투덜대고 있었다. 그런데 마라톤 인파 속에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며 달리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유모차를 밀며 온 가족이 달리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 아이들보다 아주 조금 큰 어린이들도 달렸다. 장애인 휠체어를 팔로 힘껏 굴려서 가는 사람도 있었고, 휠체어를 밀어주며 함께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자리를 절뚝거리며 달리는 남자도 있었고, 커다란 수레에 장애인을 눕혀 태우고 그 수레를 밀며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 대회를 바로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라톤 대회에 휠체어를 타거나 밀며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수아야, 주아야, 정말 멋지지 않아?"


라고 말하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눈물을 훔치며 소리 질러 응원하고 아이들과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끝도 없는 행렬이었지만 관객이 된 모두는 끝없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달리는 선수들은 더욱 힘을 받아 손을 높이 흔들어 보이며 신이 나게 달렸다.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의 목표와 한계에 도전하며 이 마라톤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사연과 인생을 가지고 달리는 이 많은 인파가 내 앞을 지나가니 내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감동에 눈물이 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빈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이런 멋진 순간을 선물로 받다니.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나에게 우주가 주는 선물 같았다.


응원에 힘을 받는 선수들과 끝도 없이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사실 이 마라톤 대회로 인해 나의 여행 마무리가 무척이나 고달파졌다. 도로가 통제되고 마라톤 행렬이 끝도 없었던 탓에 아이들과 길을 건널 수 없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한참 후에도 끝도 없이 선수들이 달려와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쌍둥이 유모차를 밀며 그 인파로 들어가 잠시 같이 달리다가 왼쪽으로 빠져 길을 건넜다. 2킬로 가까이 떨어진 주차장까지 쌍둥이 유모차를 밀며 겨우 도착했는데, 짐을 가지러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도로가 차단되어 있어 호텔 근처에 차를 가지고 올 수 없었다. 이곳 지리를 잘 모르는데, 마라톤 대회까지 감지하지는 못하는 구글맵이, 돌아도 돌아도 계속 차단된 도로로만 안내를 해주어 한참을 돌고 헤맸다. 그러다 머리를 굴려 최대한 멀리 가서 반대방향으로 돌아 호텔에 접근할 수 있었다. 집까지 가려면 6시간은 걸려서 늦지 않게 출발하려고 했는데, 이미 계획한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낯설고 복잡한 도시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마라톤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마주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놈의 마라톤 대회 때문에!' 라며 무진장 원망했을 것이다. 지만 그 순간에 받은 감동은 그 이상을 지불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본 달리기는, 그저 달리기가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인생과,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꿈이 녹아있는 그 무엇이었다. 나는 체력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유럽에 온 첫해에 워낙 많이 아프고 약해졌던 탓에, 더 이상 이렇게 약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의지였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매일 무언가를 배운다. 그래서 더 달려보고 싶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짧은 마라톤 대회도 나가보고 싶다. 다음에는 나만의 이야기와 나만의 목표를 가지고 마라톤 선수로 참가해 보기, 그리고 낯선 이들의 조건 없는 응원과 환호받아보기. 유럽생활의 버킷리스트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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