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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Jan 04. 2019

나의 대인관계 용량은 몇cc일까?

나를 이해하면 관계가 편해진다

상담심리 대학원에서 재미있는 심리검사 워크숍을 했다. FIRO-B라고 하는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검사였다. “당신의 관계 용량은 몇cc입니까?” 라는 제목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시작하기 전부터 나의 대인관계 용량은 어느 정도일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나는 원래 많은 사람과 어울려 지내거나 그다지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 아닌데, 사회생활을 하고 특히 아나운서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계에 유연해 지고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연 타고난 기질대로 결과가 나올까, 아니면 다듬어진 성격대로 나올까.      


타고난 기질대로였다. 거의 최하 점수가 나왔다. 점수를 잘못 매긴 게 아닐까 싶어 여러 번 확인했다. 그 점수가 맞았다. 기질은 변하지 않는구나. 대인관계욕구 0~54 중에 한국인 평균은 21.9였고 나는 10이었다. 수십 명 검사자 중 10점 이하는 거의 없었으니 나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왠지 낮은 숫자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관계 용량이 크다고 좋고 작다고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몇 사람만의 관계에서도 만족을 느끼는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라 했다. 나의 대인관계 ‘욕구’에 대한 내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인간관계는 늘 좁고 깊은 편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어릴 적부터 친구 세 명, 그 외에 친구를 더 많이 만들려 하거나 애써 더 많은 사람을 만나려하지 않는다. 수십 명이 함께 하는 모임에서도 이사람 저사람 다양한 관계를 맺기보다 마음 맞는 한 두 사람과 통하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 결혼식도 꼭 가고 싶은 경우에만 갔고, 내 결혼식에도 그리 많이 초대하지 않았다. 나 나름의 울타리 안과 밖의 구별이 확실했다. 울타리 안에 사람에게는 따뜻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차가울 만큼 무관심했다. 그리고 누군가 함부로 선을 넘어 들어오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사회생활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담아도 보고 먼저 다가가 보며 많이 달라진 줄 알았지만, 내가 행복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용량은 정해져있었던 것이다.      


검사를 통해 내 관계 욕구를 확인 한 후로 나는 관계 용량을 애써 늘리려 하지 않고 나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었다. 왠지 빠지면 소외될 것 같아 신경 쓰였던 모임에 가지 않았다. 네트워크를 위한 자리도 꼭 가고 싶을 때만 갔다. 가기 싫은 그룹의 모임이나 연락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나는 친밀한 몇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명확히 알고 나니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갑자기 정리하거나 쳐낼 필요는 없지만, 관리하려 애쓴다든지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마음가는대로 편하게,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들과는 그냥 그렇게 지내면 되는 거였다. 그러고 나니 내 자신과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더 많아졌다.      



꼭 검사를 해야만 나의 관계 용량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워크숍을 함께 했던 같은 과 대학원생들이 검사 결과의 점수에 따라 네 그룹으로 나눠 앉았는데, 그 결과는 서로가 예상할 수 있는 대로였다. 누가 봐도 ‘오지랖이 넓은 사람’, 사람들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모임과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이 ‘High’그룹에 앉아있었다. 내가 있던 Low그룹에는 독립적이거나, 소수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모였다. 각 그룹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역시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편안함과 만족을 느끼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들 관계 용량을 늘려보려 애쓰지만 꼭 그럴 필요 없다. 워크숍을 진행했던 권수영 교수는 ‘대인관계가 좋다’는 것은 마당발이거나, 처세술에 능하거나, 의사소통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욕구의 용량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관계 욕구 용량은 몇cc일까. 1000cc로 충분히 행복한 경차인데 괜히 남의 시선 신경 쓰며 2000cc, 3000cc 차처럼 무리해서 달리는 것은 아닌가. 자꾸 큰 차로 바꾸려는 것은 아닌가. 내 크기에 맞게, 내 행복에 집중하며 나다운 관계를 만들어보자.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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