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기 위한 첫 번째 관문
거절하기가 어렵다. 나는 항상 긍정적인 답변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거절해야 할 때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어떻게 말해야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지 또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늘 덧붙였다.
전에는 바쁘게 일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것에 감사와 보람을 느꼈지만 육아를 시작한 후로는 여러 가지 기회비용을 따지게 된다.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새벽같이 달려와야 하는 친정엄마의 희생, 남편의 이른 퇴근과 서포트, 예쁜 아기와 함께 있지 못하는 나의 아쉬움, 엄마로서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 그래서 일을 많이 안 해야지 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해 하나 둘 받다 보니, 아기를 낳고 3개월 무렵에 거의 매일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두세 달 동안 그 바쁜 시기를 전혀 행복하지 않게 보내고 나서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왜.. 나는 왜 이 어린 아기를 두고 일하러 갔을까.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결국... 나는 왜 거절하지 않았을까.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에 퇴사를 했다. 그런데 No를 못하니 오히려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휘둘리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반드시 No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라이프 코칭을 받을 때, 나는 코칭 주제로 ‘거절하기’를 꺼냈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No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더니, 코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천히 말했다, “No라고 말하는 것과 죄책감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정말 천진난만하게 나에게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게... 나는 왜 ‘죄책감’을 느꼈을까. ‘아쉬움’, ‘미안함’도 아닌 ‘죄책감’이라는 걸 느꼈을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거절하면,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나요?” 그랬더니 코치가 “왜요?”라고 묻는다. 나는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게요...” 그러게. 나는 뭐가 그렇게 미안했을까. 코치가 말했다. “그러면, 거절한 후에 한 번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거절해서 많이 속상하세요? 라고. 아마 미정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지 않을 거예요.”
실제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상대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고, 그중 답이 Yes이든 No이든 그것은 나올 수 있는 답변 중 하나이다. 그중에 내가 No를 골랐다고 해서 어마어마한 죄인 노릇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마음이 놀랍게 가벼워졌다. 강의 의뢰가 오거나 누군가 나에게 일을 요청했을 때 이제 나는 바로 답하지 않고 “가능한지 확인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먼저 이 질문을 내게 던진다. ‘나는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은가?’ ‘이걸 하면 행복한가?’ 하고 싶다, 행복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 흔쾌히 수락하고, 그렇지 않다면 용기 내어 거절한다. 물론 사람이 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고, 그러다보면 수입이 줄기도 하지만(실제로 많이 줄었지만), 이건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한, 나의 작지만 소중한 날갯짓이다.
그리고 거절 답변을 보낼 때도 전처럼 “에구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그날 다른 일정이 있어서 어렵겠습니다. 다음에 꼭 함께하겠습니다. 또 연락주세요!” 라고 애처롭게 말하지 않는다. ‘죄송하다’라는 말은 빼기로 했다. 눈물의 이모티콘도 빼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부드러운가, 저렇게 말해야 다음에 또 찾아줄까, 글자를 썼다 지웠다 망설이는 것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아쉽게도 그날은 어렵겠습니다.
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상대방이 보기에 아무 차이 없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큰 차이다. ‘거절’을 나의 하나의 답변으로 생각하기. 그로 인해 미안해하지 않기. 이 소심해 보이는 작은 실천으로 나는 조금씩 더 행복해지고, 조금씩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거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의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거절을 함으로써 내가 다음에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흔쾌히 Yes를 외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속일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중요할까.
No라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가 상처받지 않는다. 상대가 받을 상처보다, 오히려 거절 못 해 불행한 나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어떨까. No라고 말하지 못하면 결코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죄책감 없이 거절할 수 있게 된다면,
인생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앤드류 매튜스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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