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대응의 3수준
끊임없이 뒷담화를 하는 사람,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사람.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도 한통속이 되는 듯한 찝찝한 기분이다. 관계를 끊을 수도 없고, 매번 받아줄 수도 없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런 사람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직장에서는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어딜 가나 꼭 이런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여러 곳에서 일을 했지만 항상 이런 사람이 있었다. 매사에 불평인 사람도 대하기 힘들지만 더 힘든 유형은 남의 험담을 자주 하는 사람이다. 같이 대화를 하면 맞장구쳐주는 게 나의 본능인데, 가까운 사람의 뒷담화를 할 때는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참 어렵다. 특히 상사가 그러는 경우에는 말을 무시할 수도 없어 더욱 어렵다.
방송 프로그램은 남녀가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궁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파트너 운이 좋은 편이어서 잘 맞는 사람과 뉴스를 하거나 혼자 라디오를 진행해서 큰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런데 피곤한 상사와 함께 파트너가 된 후배는 그 스트레스로 퇴사를 고민할 정도였다. 라디오를 같이 2시간 씩 진행하는데 음악이나 광고가 나갈 때 동료들의 뒷담화를 끝도 없이 했고, 엔지니어가 밖에서 들을까 싶어 글로 써가면서까지 험담을 했다고 한다. 즐거워야 할 라디오 방송이(제목도 ‘즐거운 오후3시’였는데..), 좁은 부스 안에 갇혀 매일 험담이나 들어야 하는 지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후배는 입사 1년차 아나운서였고, 선배는 40대 후반의 부장 아나운서였으니, 당연히 찍소리도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
직장을 옮긴 후에도 그런 사람은 있었다. 방송 직전 스튜디오 안에서도 동료들의 험담을 많이 해서 옆에 있는 파트너가 무척 불편해 했다. 그가 저녁 시간대 메인뉴스 앵커를 맡게 되었을 때는, 여자 아나운서들 모두 그 뉴스만은 피해가길 바랄 정도였다. 아나운서들의 꿈이라는 메인뉴스 앵커 자리도 싫다할 정도니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을까.
그를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A아나운서는 뒷담화를 어쩔 수 없이 들어주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B아나운서는 험담할 때 일절 반응해주지 않았다. 불편하긴 했지만 완전히 무시하니 더 이상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C아나운서는 스트레스를 참다 못 해 화제를 돌렸다. 아이가 둘 있는 공통점을 내세워 자녀 이야기로, 혹은 그가 좋아하는 야구 이야기로, 주제를 바꿔 본인이 대화를 적극 리드했다.
저마다의 살 길을 찾는 그녀들의 방법이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험담하는 사람에게 이 세 가지 수준에서 반응을 한다.
1수준 : 적당히 들어 준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 없고 상대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매번 험담을 들어줘야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2수준 : 무반응으로 대한다. 상대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단계이다. 상대가 기분 나빠하겠지만 나에게 험담을 늘어놓지 않게 돼 매우 편하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 거리감이 생기는 단점이 있다.
3수준 : 주제를 내가 리드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관심사로 이야기를 꺼내 대화의 주제와 분위기를 아예 바꿔버린다. 상대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좋은 대화로 바꿀 수 있어 긍정적이다. 단 나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인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대부분 1수준에서 머문다. 뒷담화에 맞장구까지 치지는 않더라도 상사의 이야기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찝찝한 표정으로 “아, 하하, 네...”하며 마지못해 듣는 척한다. 듣고만 있어도 한 편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2수준은 ‘내가 당신의 말이 불편합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아요.’를 내비치는 것이다. 무응답, 무표정으로 반응하며 그냥 내 일에 집중한다. 내 선배는 이런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것도 꽤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다른 대화나 관계도 단절되는 단점이 있다. (그 선배는 오히려 말을 안 섞게 돼서 정말 편하고 좋다고 했지만.)
3수준까지 가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부정적인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불평불만과 뒷담화는 받아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래도 일 잘하잖아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라는 정도로 적당히 받아주다가 퇴사할 때까지 험담에 시달려야할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에너지에 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리드’가 필요하다. “주말에 아이들하고 실내 동물원에 다녀왔는데 엄청 좋더라고요. 선배님 새별이 데리고 가보셨어요?” “아이들 때문에 휴가지 고르기가 너무 어려워요. 차장님은 어디로 가셨어요?” “어제 한국시리즈 보셨어요? 13회까지 연장돼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주말에 골프 몇 타 치셨어요?” 그들의 관심사, 나와의 공통점 등으로 적극 리드하면 긍정적인 주제로 바꿀 수 있다. 에너지와 노력 없이 이들을 대적할 수는 없다.
무엇이든 노력하는 만큼 달인이 되듯,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다. 고민 없이 편하게만 지내면 사람들의 가진 불평과 비판, 험담을 들으며 부정적인 에너지에 말리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불평을 배출할 만만한 타깃이 되고 많다. 그것을 끊어내려면 나의 결단, 관심사를 파악하는 치밀한 노력, 대화의 흐름을 바꿀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대응은 지금 몇 수준일까.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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