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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Feb 25. 2019

나와 맞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에니어그램의 9가지 성격유형

엄마가 종종 아이를 보러 와주신다. 종일 아이만 보는 것도 힘든데 나갔다오면 빨래에 청소에 밥까지 해두신다. 애 보면서 얼마나 힘이 들까 싶어 늘 이야기한다.

“집안 일 하지 말고 수아만 봐줘. 수아 잘 때 자고. 엄마도 힘들잖아.”

“응, 알았어.”

그런데 저녁 무렵 돌아오면 또 부엌에서 국 끓이고 반찬 만드느라 바쁘다. 아이는 혼자 놀거나 징징거리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저녁 안 차려도 된다니까.”

“그래도 집에 오면 따뜻한 국이라도 있어야지.”

그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저녁 반찬이 뭐든, 국이 있든 없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엄마가 아이 보러 와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이가 할머니와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김 서방도 늦게 오고 나도 저녁 안 먹을 거니까 저녁 차리지 말고 그냥 수아 봐줘. 요즘 옆에서 같이 안 놀아주면 자꾸 소리 지르니까.”

‘엄마 힘드니까’라고 좋게 이야기했다가 말이 점점 거칠어진다.

그러나 아직도 엄마는 애를 들쳐 업고서라도 국을 끓이고 밥을 차려놓는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성격유형을 공부하면서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관심을 갖게된 ‘에니어그램’이라고 하는 성격유형 검사였다. 에니어그램은 9가지로 성격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특성, 장단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 엄마는 ‘2번 자상한 사랑주의자’ 형이다. 베풀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인정 받으며 삶의 기쁨을 찾는 유형이다. 그렇게 타고나서 평생 그렇게 살아온 엄마에게 아무리 내가 “밥 차리지 마.” “반찬 안 해도 돼.”라고 이야기 해봤자 한 순간에 바뀔 수가 없다. 엄마는 그냥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엄마의 기쁨인 것이다.      


나는 ‘효율적인 성공주의자’유형이다.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가, 별로 티 나지도 않는 집안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을 이해할 리가 없다. 나는 설거지나 부엌정리를 하다가 시간이 훌쩍 가버리면 ‘이 시간이면 글을 썼을 텐데’, ‘이 시간이면 책을 한참 봤을 텐데’ 라며 (내 기준에)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 쓰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각 성격유형과 특성을 알고 나니, 나의 잣대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저녁 안 해도 돼” “청소 하지 마 엄마.” 라는 말 대신에, “집안이 반짝반짝해졌네!” “와 이 국 맛있다. 기름에 볶아서 끓인 거야?”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엄마는 신이 나서 “응, 고기 좀 넣고 끓이려 했는데 고기가 없어서, 참기름 넣고 고소하게 볶아서 끓였어. 맛있지?”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마. 엄마 힘들잖아. 그냥 쉬어!” 라고 했을 때 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대화이다.     


에니어그램의 9가지 성격유형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 많이 불편했던 직장상사들이 생각났다. 엄격한 잣대로 팀원들을 숨도 못 쉬게 했던 상사는 1번의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이었구나. 독불장군처럼 군림하던 그 상사는 8번의 통제하려는 성향 때문이었구나. 늘 여행과 운동에 관심이 많고 회사일은 뒷전이었던 그 상사는 7번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었구나. 그들의 본능과 성향이 이토록 다르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덜 미워하고,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퇴사를 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겠지만.)      


회사에서 나쁜 상사를 대하면서 동료들끼리 자주 했던 말은 “정말 이해가 안 돼!”였다. 어쩌면 당연하다. 타고난 본성이 다른데 내 틀로 해석하려 하니 당연히 이해가 안 된다. 상대도 나란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그들의 프레임으로 바라봐야 한다. 여러 성격 유형을 파악하고 그 욕구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사용하면 갈등을 줄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9가지 에니어그램 유형과 이들을 대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성격유형 공부를 하면서 떠오른 말이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좋은 건,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거야.” 내가 회사에 다닐 때, 퇴사하고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던 기자 선배의 말이었다. 나는 그 경지까지 달하진 못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특성을 알고 나면 그들의 말과 행동을 조금 더 헤아리게 된다. 그들의 프레임에 맞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지혜가 조금씩 생긴다.      


“저녁 차리지 말라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것이 못내 걸려 돌아간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다.

“엄마! 북엇국 진짜 맛있다! 밥 한 그릇 뚝딱했어. 나 생각해주는 사람 엄마밖에 없네!”

행복한 엄마에게 하트눈과 윙크의 이모티콘이 마구 날아온다.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더 많은 대화법, 책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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