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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Mar 04. 2019

영혼 없는 맞장구보다 진심어린 질문

함부로 공감하지 말아주세요

오랜 시간동안 상대를 맞춰주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살아오다보니, 요즈음은 그런 대화법이 유독 귀에 거슬린다. 나도 참 많이 맞장구를 치며 대화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맞장구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친구 중에 공감과 맞장구의 정도가 조금 넘어선 듯한 친구가 있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잘 들어주고, 맞장구를 정말 잘 쳐줘서 이 친구랑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영혼이 없게 느껴졌다.      

친구가 대화할 때 기계처럼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어어~ 뭔 말인지 알아.”

처음에는 내 맘을 딱 알아주는 것 같아 시원한 느낌이 있었는데, 계속 반복되니 ‘벌써 내 마음을 알까?’ ‘정말로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라고 하니, 차라리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정말 궁금하다’라는 마음으로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나에 대해 잘 알아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 내 마음까지 섣불리 판단해버리면 너무 아쉽다. “아 뭔지 알겠어.”라는 말보다 “아 정말?” “아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고 난생 처음 접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알아가 줬으면 좋겠다.       


철학적 용어에 ‘에포케(epoche)’라는 말이 있다. ‘판단 중지’라는 뜻이다. 대상에 대해 선입견이나 습관적인 이해, 기존의 관점을 배제하고 판단을 중지한 상태에서 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버리고 ‘here and now’,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나는 심리상담을 공부할 때 에포케를 배웠다. 상담에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절대로 섣불리 공감하거나 이해해버리지 말고, ‘판단 중지’한 상태에서 그 시간, 그 상황, 그 사람에 집중해서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이 이런 성향인가보다, 이런 문제가 있겠구나,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이런 마음이겠구나.’ 속단하며 그 상대의 본질을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포케를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또 달랐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지만 우리는 이미 수많은 경험과 생각과 판단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중지시키고 처음 세상을 마주하는 사람처럼 있는 그대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상담실습을 할 때, 나의 판단들을 버리고 내담자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며 경청하려했다. 하지만 ‘오, 이 사람 나랑 비슷하네. 나도 저런 성격 때문에 힘들었는데. 맞아 맞아.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거야.’라는 많은 생각이 들면서 내담자의 말에 너무 쉽게 맞장구 쳐주고, 이해해버렸다. 첫 상담실습의 녹음기록을 들어보니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나치게 공감해버리고, 내담자의 말이 막힐 때는 심지어 대신 예측해서 말해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실수를 범했다. 그것은 내 몸에 밴, ‘판단과 예측’으로 가득 찬 나의 습관이지 ‘진정한 공감’은 아니었다.     


장자는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공감은 혼신을 다해 듣는 것. 이것은 신체의 기능이나 마음으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능적인 것을 비울 필요가 있다. 그런 기능적인 나의 모든 것이 비워졌을 때, 그 때에는 온전한 존재로써 듣게 된다.”

판단하지 않고 나를 비우는 태도가 진정한 공감을 만든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만 탓할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아 맞아 맞아!”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랬어!”라며 모든 몸짓과 표정과 목소리로 섣불리 상대를 이해한다고 했던 것 같다. 단 한 번이라도 나의 지식과 경험과 판단을 비우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서 상대의 진심에 깊이 들어가 본 적이 있었을까.   

  

‘공감이 중요해’라고들 하지만 섣부른 공감, 너무 쉬운 공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내가 쉽게 내리는 판단은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앞에 있는 이 고귀한 존재를 결코 내 판단의 지배아래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인과 헤어진 이야기를 하며 슬퍼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래, 나도 알아. 헤어지면 늘 그렇더라. 나도 그때 헤어졌을 때 그랬잖아!”    

 

하면서 섣불리 내 경험을 빗대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휴, 그런 큰 일이 있었구나.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지금은 마음이 어때?” 

“혹시 헤어지기로 결심했던 이유가 있었어?”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도 몰랐네... 그 후로 좀 괜찮아졌어?”     


라고 마음을 충분히 받아주면서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질문해주면 좋다. 그러면 상대는 자신이 이야기를 온전하게 털어놓으면서 위로도 받고 자기감정을 다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여기서 주의할 것은 취조하듯 질문을 이어나가거나, 내가 궁금해서 캐묻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이야기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경청하다가 침묵이 생겼을 때 여유를 가지고 질문하는 것이 좋고,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보다 상대가 마음을 털어놓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육아에 시달려서 “육아가 너무 힘들어.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어려운 것 같아.” 라며 하소연 하면     

“그래 맞아. 애 키우는 게 다 그렇지 뭐.”     


라고 일반화 하며 다 겪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이 힘들 구나. 무슨 일 있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구나.”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 어땠어?” 

“아이고... 정말 쉽지가 않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나의 마음을 더 알려고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 너무 섣불리 공감하지 말고, 내 마음을, 내 생각을, 내 경험을 진심으로 궁금해 해줬으면 좋겠다. 영혼 없는 맞장구보다 ‘진심어린 질문’을 받고 싶다. 관심 갖고 물어봐주고, 걱정해주고,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다.      


나 또한 기계적으로 해왔던 공감, 잘한다고 착각했던 공감의 습관들을 버리려 애쓰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새롭게 듣고, 새롭게 느껴보려 한다. 그러면서 궁금해지는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고 싶다. 더 깊이, 소중하게, 상대를 알아가고 싶다.         

  

질문이 없는 삶은 정체되지만
질문이 있는 삶은 발전을 이끌어 낸다.

- 롤프 도벨리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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