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길을 내는 법
나도 앞에 나서기가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수업 때 손을 든 적이 별로 없고, 내 발표 차례를 기다리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그런 내가 대학생 때 아나운서가 되기로 꿈을 꾸면서 결단한 것이 있었다. 나의 스피치 훈련을 위해 모든 조별 프로젝트의 발표를 내가 나서서 하는 것이다. 대부분 발표는 꺼려하기 때문에 함께 하는 이들도 나의 자원을 환영해주었다. 또 연극동아리에 들어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했고, 토론대회에 나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훈련을 했다.
나의 울렁증은 그 때 많이 극복되었다. 발표력도 전달력도 그 때 많이 다듬어졌다. 그러다보니 학교 행사에서 사회를 볼 기회가 많아졌고, 언제부턴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점점 편안해졌다. 가끔 스포트라이트까지 더해지면 짜릿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모든 발표를 나서서 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내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그때 학교에서 차곡차곡 그 시행착오를 쌓지 않았다면, 내가 사람들 앞에 서는 것,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자신감 있게 말하는 능력을 갖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표현도 습관이다. 늘 참는 사람은 참고, 늘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당당하게 표현하는 내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1일 1표현을 실천해보자. 무엇이든 하루에 하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로 나와 약속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재미있게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자기표현에 익숙해질 것이다. 모든 순간을 표현 연습의 기회로 삼아보자.
아침.
남편이 먼저 출근하면서 바빠서 인사도 한 채 만 채 집을 나가버린다. 그것이 좀 서운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살면서 매일 애틋하게 인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뭐...’ 하며 참아왔다면, 오늘은 한 마디 건네 본다.
“여보, 나는 당신이 출근하기 전에 내 눈 보면서 인사하고 가면 기분이 좋더라.”
표현할 때 주의점은, “왜 항상 인사도 안 하고 나가버려?!”라고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다. 내가 느끼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되도록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상사에게.
여름휴가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팀장은 휴가 일정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이번 휴가는 온가족이 함께 하기로 해서 모두 나의 스케줄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 다들 입 다물고 있어서 먼저 이야기 꺼내기가 눈치 보인다. 몇 주 동안 말 못하고 기다리기만 했는데 오늘 한 번 말해보자.
“팀장님, 혹시 우리 팀 휴가일정을 언제쯤 잡나요? 이번에 가족들과 다같이 가기로 해서 일정조율이 좀 필요해서요.” 그러면 의외로 “아 맞다. 날짜가 벌써 그렇게 됐구나. 잡아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다. 혹은 “아 실은 7월 말에 우리 프로젝트 심사 날이어서, 휴가 일정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 중이야.”라고 이유를 설명해줄 수도 있다. 설사 “쫌 기다려!”라고 퉁명스럽게 돌아온 들 어떠한가, 내 속이 타겠는데.
점심시간에.
기다리던 점심시간. “오늘 뭐 먹지?”라는 동료들의 고민에 “아무거나 좋아요.” “선배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오늘 비가 와서 뜨끈한 짬뽕 먹고 싶어요! 어떠세요?”라고 명쾌하게 한 번 이야기해 본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한 번씩은 나 먹고 싶은 것도 좀 먹어보자. “어떠세요?”라고 덧붙이면 독단적인 느낌을 줄일 수 있다.
연인에게.
데이트 하고 나면 항상 남자친구가 집 앞에 바래다주는 연인.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새삼스레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매번 이렇게 바래다줘서 고마워. 예전에 혼자 집에 올 때 무서웠는데, 지금 너무 든든해.” 상대도 그동안의 피로가 사라지지 않을까. 꼭 어떤 요구사항을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고 느껴 표현하지 않았던 것들을 솔직하게 꺼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표현이 될 수 있다.
매 순간 표현하려고 신경 쓰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하루에 딱 한 번만!’ 이라고 생각하면 부담 없이, 재미있는 미션으로 해볼 수 있다. 그렇게 미션 수행에 하나씩 성공하다보면 어느새 습관이 되어, 그때그때 드는 마음을 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원래도 진수성찬으로 저녁상을 차려주는 사랑스러운 아내는 못 되지만, 육아가 시작되고부터는 정성껏 저녁을 차려주기가 더 어려워졌다. 어느 날은 국 하나에 김과 김치로 저녁을 차려 먹다가 문득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여보, 저녁 더 맛있게 차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새삼스러운 말일지 모르지만, 그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나를 이해해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만 두었던 말을 꺼내고 나니,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솔직해지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후련해졌다.
표현한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표현은 내 감정과 욕구를 마음에 묵혀두지 않고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력 있게 살아나야 나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균형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매일 조금씩 길을 내야 한다. 1일 1표현. 오늘은 누구에게 무엇을 표현해 볼까.
이 매거진의 글은
'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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