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의 심리
미투 운동이 세계적으로 퍼졌다. 소셜 미디어에 #MeToo라고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고발하는 캠페인으로, 할리우드의 영화배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 캠페인을 제안한 지 하루만에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지지를 표했고,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경험을 폭로했다. 우리나라에도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단계, 연극계, 문화·예술계, 정치계에 이어 학교 내 미투 운동인 스쿨미투까지 빠르게 확산되며 파문을 일으켰다. 단순히 소셜 미디어에 밝히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법적 대응을 하고, TV뉴스에도 출연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그들의 심리가 궁금해 많은 심리학자들의 의견을 찾아보았다. 그들은 미투 운동의 심리에 대해서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후발주자의 경우 부담감이 적다는 공감의 힘과 혼자가 아니라는 보편성의 심리, 그리고 앞에 세 사람이 동의하면 동조의 크기가 더 커진다는 동조심리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여성이 성추행이나 성폭행 경험에 대해 자기노출을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알리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알렸을 때 주변의 관심, 시선, 선입견, 앞으로의 피해 등 감수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또 그 사실을 알린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사과는 커녕 맞고소가 기본이다). 만일 받는다 한들 사과로 치유될 일도 아니다. 표면상으로 내게 도움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단단히 각오하고 감내해야 할 것투성이다. 그러니 그저 누군가가 먼저 밝혔다는 이유로, ‘그래, 그럼 나도’라고 쉽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라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여러 번 상상해보았다. 솔직히 나는 못할 것 같다. 그런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무엇이 그녀들을 용기 있게 만들었을까? 나는 아마도 사람들의 시선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더 존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외치는 절규, 억울함, 상처를 누르고 나를 속이며 살 수도 있지만, 이제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어떤 시선과 불편함을 받든 더 이상 나를 속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나를 자유롭게, 나답게 놓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입증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은 한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시작됐다. 1955년 미국 몽고메리 주에서는 흑백 분리주의가 더욱 심했다. 버스도 앞은 백인, 뒤는 흑인의 자리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은 버스 앞자리에 앉았고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관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거기 계속 앉아 있으면 감옥에 집어넣겠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그녀는 예의바르게 이야기했다.
“제가 사십 년 넘게 스스로를 가두었던 감옥에 비하면, 벽돌과 철망으로 만들어진 당신네 감옥이 뭐가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나는 이제 막 인종차별을 거부함으로써 그 감옥에서 빠져 나온 걸요.”
미투 운동에 용기 냈던 그녀들 역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고통이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내며 감내해야 하는 고통보다 더 컸던 것 아닐까. 용기 있게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에게 솔직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참모습을 존중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남의 눈치만 보면 자기 마음은 문드러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누르고 누르면 나다운 삶을 잃게 된다.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한 그들의 용기 있는 결정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뜨거운 불을 지피고 부패한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다. 몽고메리에서도 한 여성의 용기 있는 행동이 흑인들의 버스승차 거부운동으로 이어지고 흑인 민권운동의 발단이 되었던 것처럼, 용기 낸 미투 운동이 사회의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자기를 존중해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이렇게 강력하다.
나를 찾기 위해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그녀들이 참 멋지다. 그 목소리를 듣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내면의 목소리를 낼 힘을 얻는다. ‘나도 용기 낼래!’ ‘나도 내면의 소리를 낼래!’ 그것이 “Me, too!”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나 또한 그런 용기를 갖고 싶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 삶이 조금 험난해지더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지더라도, 솔직한 나로 살기를 선택할 용기 말이다.
당신 자체이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것이,
당신이 아닌 것이 당신인 척하여
사랑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 앙드레 지드
이 글은 '하고 싶은 말을 센스있게' <말하기의 디테일> 의 일부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