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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Jul 28. 2022

엄마의 슬픈 가면

벗겨진 순간이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


감기 몸살 닷새 째. 이쯤이면 나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더 심해진다.

목감기가 심해 며칠 째 잠을 못 이루고 있고, 어제부터는 기침이 심해져서 온몸에 근육통과 두통이 함께 생겼다.


오늘은 수아가 유치원에서 동물원으로 소풍 가는 날이라 한 시간은 더 빨리 일어나야 했다. 7시 45분에 학교에서 버스가 출발하니 늦지 말라고 선생님이 당부했던 터였다. 나도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6시 10분에 일어났다. 오늘은 몸이 천근 만근이다. 심한 기침으로 온몸이 충격을 받아 서인지 허리며 머리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세수를 하는데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기침할 때마다 물을 들이켜서인 것 같다. 


핸드폰으로 신나는 캐치 티니핑 노래를 틀어 아이들을 깨우러 갔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도 많이 피곤하고 힘들 거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무드로 깨워야 한다. 커튼을 걷고 신나는 노래에 맞춰 아이들 쭈까쭈까를 해주고, 꼭 끌어안아 부비부비 얼굴을 비비며 뽀뽀해준다. 내 몸이 무겁고 목이 아파도, 목소리는 하이 톤으로, 힘들다는 아이 둘을 차례로 업고 1층으로 내려온다. 오늘은 나도 정말 아프다. 업은 채로 계단에서 넘어질까 싶어 평소보다 다리에 힘들 꽉 준다. 주방으로 내려오자마자 어제 준비해둔 사과와 복숭아를 깎아 수아와 주아, 남편의 간식 통에 담았다. 공복에 약은 안 좋을 것 같아 남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나서 바로 진통제 두 알을 먹었다. 이대로는 애들 유치원에 데려다주지도 못할 것 같았다.


"수아야~ 쉬할까?" "주아야~ 쉬할까?" "우리 양치할까?" "엄마가 간식 통 두 개 넣었으니까 소풍 가서 먹어~" "옷 입자, 엄마가 옷 입혀줄게."


순순히 따라줄 리 없는 아이들이다. 그때마다 하이톤으로 어르고 달랜다. 30분 안에 출발하려면 최대한 아이들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

"양말 신자" 신고 있을 리 없다. "이리 와 엄마가 신겨줄게" "사과 다 못 먹은 거 싸줄게 차에서 먹어~"

목이 아파서 그만 말하고 싶은데, 나의 말이 없이 아침이 굴러가지 않는다.


너무 아픈데, 즐겁고 씩씩한 엄마를 연기하고 있자니 슬퍼진다. 

남편도 내게 감기가 옮아 힘없이 출근했고, 이 아픔을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아파도 아픈 척을 할 수도 없다.

겨우 차에 태워서 유치원에 무사히 도착. "선생님한테 Pee Pee Poo Poo 잘 얘기하면 오늘 아이스크림 사줄게~ 파이팅!" 기저귀를 뗀 후 최근 실수가 잦은 둘째를 들여보내고, "가서 모자 꼭 쓰고, 간식 잘 먹고 와~!" 동물원에 가는 첫째를 들여보냈다. 환한 미소로 빠이빠이. 아이가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나는 가면을 벗는다.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차로 돌아와 철퍼덕. 잠시 한 숨 돌리고 정신을 차려본다. 행여나 사고라도 날까 눈을 크게 뜨고 운전을 해서 집에 온 후 감기약을 하나 더 먹는다. 그리고 기운을 차리기 위해 빵과 커피를 꾸역꾸역 먹는다.


요즘 너무 힘들거나 아플 때마다 자꾸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그때 엄마 아빠는 우유대리점을 하며 학교와 가게 등에 우유 배달을 하셨는데, 엄마가 우유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학교 앞 신발가게에서 봤던 빨간 샌들에 꽂혀서, 자고 있는 엄마에게 가서 5000원짜리 샌들을 사고 싶다고 졸랐다. 엄마는 피곤에 절어 인상을 쓰며 한참을 대답을 안 하다가 "아잇, 사, 사. 돈 가져가서 사!!" 하고 짜증을 내셨다. 엄마의 인상과 짜증이 강렬해서인지 아직도 잊히질 않는데, 요즈음에는 다른 느낌으로 그 장면이 떠오른다. 


체력이 달리고 두 아이가 각자 떼를 쓰고 보채면 나도 종종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그럴 때, 그때의 엄마의 불같이 짜증 내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가난한 살림에, 종일 우유배달에 피곤한데, 세 남매를 키우고, 종종 술에 절어있는 변변치 않은 남편과 살면서 그 삶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고된 몸을 잠시 눕혀 잠을 청할 때, 철없는 딸은 엄마의 고통을 알아주기는커녕 샌들을 사달라고 조를 때, 얼마나 힘들고 서러웠을까. 버럭 화를 내는 것이 엄마답지 않아 그 장면이 내내 잊히지 않았다면, 요즘은 그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아서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굉장히 자주 떠오른다. 지금의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더 무거운 삶을 버텨내며, 얼마나 힘드셨을까...


엄마들은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버틴다. 웃고, 참고, 받아주고, 힘을 내고, 조금 더 힘을 내고, 아프지 않은 척한다. 그리고 종종 극한의 상황에서는 가면이 벗겨지기도 한다. 그 장면을 아이들은 기억하고 '상처'라는 것으로 오래 남겠지만, 아이가 자라 엄마가 되면 '가면'이 있다는 것과 그 가면이 벗겨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는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그 장면이 기억될 것이다.


다음 달에 엄마가 폴란드에 오시기로 했다. 그때는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아마도 엄마는 기나긴 한풀이를 하실 거고, 나는 이야기 꺼낸 걸 또 후회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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