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장님이 바뀌었는데 사모님이 얼마 전에 들어오셨다고 인사차 모인 식사자리였다. 모두 여덟 명. 한 동네에서 이미 뵈었던 두 분 빼고는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여덟 명이 채워진 후에 돌아가며 소개를 했다. 식사자리에서 하는 자기소개가 얼마만인지. 게다가 각자를 소개할 수 있는 말이 '누구누구의 와이프'라는 게 무척 생소했다.
"안녕하세요. 신00 본부장의 와이프 ooo입니다"
"안녕하세요. 장00 부장의 와이프 ooo입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자기 이름은 생략하고 누구의 와이프인지 이야기했다. 강한 자아존재감으로 살아왔던 나는 이런 자리와 소개가 어색하고 못마땅했지만 별 수 없었다. 그저 '와이프'라는 단어가 싫어 한 단어만 바꾸어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김대평 차장의 '아내' 강미정입니다."
뭐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와이프'라는 말이 나는 이전부터 싫었다. 배우자의 자리를 존중하지 않고 그냥 쉽게 부르는 호칭 같아서 뭔가 싫다. 예전에 같은 아나운서실에 있던 남자 선배가 "우리 아내가..." 하면서 늘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그 존중하는 느낌이 좋아서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밖에서 나를 '와이프'말고 '아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만은, 그렇게 내 소개를 했고. 한식당에서 만났는데 나는 1인용 음식을 각자 시켜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누군가 대구지리 전골을 먹자고 해서 돼지고기 김치찌개 한 그릇 먹고 싶었던 내 욕구는 접어두고 대구 전골을 먹었다.
전골로 시키면 불편한 점이 음식을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그릇에 떠서 주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냄비가 내 앞에 내가 그릇에 나누어 줘야 하는 입장이 되면 더욱 불편하다. 생선과 두부와 야채와 국물을 듬뿍 덜되, 네 개의 그릇에 적절히 분배해야 하는 어려움. 다른 사람 모자라게 주면 안 되니 듬뿍 덜어주고 나면 나는 먹을 게 별로 없는 것도 싫다. 그렇다고 부족한 듯 주면 눈치 보인다. 행여나 그릇이 비면 좀 더 채워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인다. 냄비는 내 앞에 있었고, 누가 봐도 내가 막내니 내가 덜어드리는 게 맘이 편할 터. 역시 음식을 골고루, 듬뿍, 균등하게 담는 것이란 어려웠다. 통통한 살들을 세 분께 듬뿍 덜어드리고, 멀리 있는 테이블에도 한 그릇 덜어드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생선 꼬리 부분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가장 핫한 주제는 '도시락 싸기'였다. 한국에서는 싸지도 않던 도시락을 여기 와서 매일 두세 개씩 싸려니 얼마나 힘들까. 삼각김밥 틀을 사면 편하다, 안에 스팸이나 고추참치를 넣으면 편하다, 여긴 스팸이 너무 비싸다, 스팸과 비슷한 것이 있다, 쌀은 어느 마트 것이 더 맛있더라.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유치원 생을 키우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도시락을 싸지 않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쌀은 그 마트에 가서 사야겠구나, 삼각김밥 틀을 나도 한 번 사볼까?라는 생각은 했지만, 별로 할 말은 없었다.
밥을 먹고 나니 2시. 아이들을 데리러 보통 3시쯤에 가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가까이 사시는 분이 "그럼 우리 집에 가서 커피 한 잔 해요."라고 했다. 나에게도 "같이 가는 거죠?"라고 물었다. 평소 같으면, "아, 네" 하며 거절 못하고 따라갔을 것 같은데 "저는 여기 옆에 폴란드어 수업 알아보려고요."라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고, 전단지에서 봤던 어학원이 식당 바로 옆에 있어서 돌아가는 길에 들러보려던 참이었다. 다른 날 갈 수도 있긴 했지만, 커피 마시러 가서 관심 없는 도시락과 음식 이야기를 또 듣고 싶지 않았다. 어학원은 잠겨 있었고 혼자서 집까지 걸었다. 올 때는 쌀쌀했는데 그새 공기가 데워져 있어 외투를 벗었다.
돌아와서 아이들 오기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소중한 나만의 한 시간. '한 시간 정도야 뭐'하며 그 자리에 가 앉아있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내가 선택한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한 것, 거절한 것, 참 잘했다. 의무감에서 해방되기 위해 나는 주재원 아내로 기쁘게 왔다. 그동안 이어왔던 커리어, 공부, 책 쓰기, 강의, 조금씩 더 잘 나가고, 조금 더 인정받고, 좀 더 나를 알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서 해방되기 위해 나는 그 모든 것은 내려놓고 처음 밟는 땅에 살기로, 3년간 신나게 여행하기 위해 나는 이곳에 왔다. 의무감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은 내려놓자. 그것이 커피 한 잔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