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았지만, 굳이 해야 하나 싶었지만, 아이들이 있으니 검사는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일어났다. 약간은 긴장. 전처럼 지침에 적힌 횟수와 방법 이상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딱 지침대로만. 결과는 음성.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깨끗했다. 내가 먼저 목감기를 앓았던 터라 내가 시발점인 것 같은데, 며칠 전에도 그때도 나는 검사에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출근은 멈추고 자발적으로 안방에 격리되었고(폴란드에서는 코로나 관련 제제가 모두 없어진 지 오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독박 육아가 시작되었다. 수목금, 평일은 그나마 괜찮았다. 평소와 같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와서, 나 아침 먹는 것 한 접시 더 차려서 방에 넣어주는 정도였다. 하원 후에도 아이들과 실컷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와서 씻기고 재웠다. 평소에도 남편이 야근이 잦아서, 밤에 하는 독박 육아는, 그렇다고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익숙하다.
문제는 주말. 나도 이제 지쳤는데 아침부터 아이들은 놀아줘, 책 읽어줘, 아빠랑 놀래, 하며 보채기 시작한다. 아침으로 내놓은 시리얼을 잔뜩 흘려놓아 걸을 때마다 부스러기가 되었고, 유리컵에 담긴 우유 잔을 식탁에서 떨어뜨려 대리석 바닥에 산산조각이 났다. 유리도 위험하지만 우유라서 대충 닦았다가는 냄새가 날 것 같아, 땀 뻘뻘 흘리며 30분 넘도록 깨진 우유 컵을 치우고 바닥을 닦았다.
날씨는 종일 비였다. 꽤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려서 여름인데도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져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버리면, 다음 주마저 등원 못 시키고 독박 육아를 하게 될 터. 더군다나 다음 주는 방학 전 마지막 주이기 때문에 다음 주에 유치원을 못 보내면 한 달 연속 독박 육아다.
피곤해서 잠시 소파나 내 방에 누워있으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서 내게 뽀뽀를 하고 선물이라며 이것저것 장난감 음식을 들이민다. 뭐라고 혼내고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다 결국 따라다니지 말라고 힘들다고 버럭 했는데, 수아가 "엄마 따라다니는 거 좋단 말이야…"라고 한다. 그 말과 표정에 너무 미안해졌다.
일어나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커피를 내려 달콤한 두유에 섞어 두유 라테를 만들었다. 커피를 들고 정원으로 나가 앉으니, 역시나 수아가 따라와 옆에 앉는다. 잠시 혼자 커피 마시며 기운 좀 내려고 했는데 그새 따라오는 게 못마땅했다. 그런데 수아는 내 옆에 앉자마자 입을 크게 벌리고 환하게 웃어 보인다. 너무 사랑스럽다. "수아야~ 이리 와. 엄마 옆에 와." 꼬옥 안아주었다. 둘째 주아도 따라 나온다. 나와서 열심히 비눗방울을 불어대는 주아. 비가 내린 후여서 하늘이 더욱 파랗게 갰고, 조각구름이 보였고, 바람이 시원했다. 공기도 좀 따뜻해졌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 평온한 휴일, 맑고 시원한 날씨. 이렇게 행복한 걸, 이제껏 왜 그렇게 지옥같이 느껴졌던 걸까.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아빠 불러보자!" 정원 옆쪽으로 안방 창문이 있는데 거기서 같이 얼굴 보며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 아~빠아~~" 아이들이 부르자 남편이 창문을 열었다. 며칠 동안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했던 남편도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은 너무 신이 나서 아빠에게 조잘조잘 말을 했고, 내려와서 같이 놀자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다 주아가 부는 비눗방울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남편이 손끝으로 터뜨렸다. 격리되어 있는 순간에도 이런 즐거운 연결이 가능하다니! 나는 곧 안으로 들어가 비눗방울을 하나 더 가져왔다. 수아와 주아는 신나게 비눗방울을 불었고, 가끔씩 바람이 휘익 불면 비눗방울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남편은 신나게 비눗방울을 터뜨렸다. 너무 열심히 비눗방울을 잡는 게 위험해 보여서 "여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하며 웃었다.
지옥같이 여겨졌던 주말, 체력도 정신력도 방전되어서 이대로 그냥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밑바닥의 순간들이 잠깐씩 있었는데, 이게 행복이구나 싶은 절정의 순간도 찾아온다. 그러니 역시 견디고 볼 일이다.
수아 주아는 요즘 최애 하는 마다가스카 영화를 보고 있고, 나는 빨래를 돌려놓고 재빨리 글을 쓰고 있다. 이 행복의 순간을 꼭 기록해두고 싶어서이다. 어제저녁은 볶음밥을 해준다고 차리고 치우고 하다가, 징징대며 보채는 아이들에게 결국 버럭 하며 힘든 저녁을 보냈는데, 오늘은 그냥 피자나 시켜먹으며 수월한 저녁을 보내야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주아가 내방으로 달려와 품에 안기며 반달눈으로 애교를 부린다. "엄마 너무 따뜻해."라고 말하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목덜미에 뽀뽀하며 아기 냄새에 한껏 행복해진다. 힘든 하루하루 속에도 반드시 그 즐거운 순간이 숨어있다. 또 지옥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면, 숨바꼭질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찾아보고 기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