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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24. 2022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등감을 안고 오다

그때 우리는

유럽에 온 이후 묘한 열등감을 느낀다.


처음 열등감을 느낀 것은 '키' 때문이었다. 나는 82년생, 167cm. 한국에서도, 잠시 일본에 살 때는 더더욱, 어디서나 대체로 키가 큰 편이었다. 키 순으로 세워 출석번호를 정하던 중학교 시절에는 48명 중 43번이었다. 지금도 평균보다 큰 편이고 강의나 방송할 때 높은 힐이라도 신으면 자신감 뿜뿜이다. 그런데 유럽에 오니 작은 키가 되었다. 이 사람들은 키가 무척이나 크다. 심지어 날씬하다. 한 뼘은 더 높이 있는 허리, 쭉쭉 뻗는 다리, 훤칠한 키에서 나오는 아우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허리와 어깨를 꼿꼿이 펴고 키를 키워 걷게 된다. 다음에 신발을 살 때는 밑창이 조금이라도 더 두툼한 걸로 사야겠다 생각했고, 얼마 전 밑창이 4cm쯤 되는 워커부츠를 샀다.  번은 옷을 사러 갔다가 예쁜 핑크빛 카디건이 있어 입어보니 할랑하게 잘 맞았다. 상표를 보니 키즈 옷이었다. 뭔가 굴욕스러웠지만 그래도 예쁘게 잘 맞아서 사고 말았다.


열등감이 더해진 것은 폴란드에 온 후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했을 때였다. 12세기부터 작센의 왕가가 살던 드레스덴 성, 1726년에 건축한 프라우엔 교회, 1728년에 지어진 거대한 츠빙거 궁전, 1841년에 건축된 젬퍼 오페라 하우스. 3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지닌, 지금 봐도 놀랍도록 섬세하고 아름다운 건축들을 보면서, 같은 1700년대에 우리나라는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1700년대라면 조선시대... 우리나라가 먹고살기 힘들었을 때, 이들은 이런 교회와 궁전을 건축하고, 오페라 향연을 즐겼단 말인가. 정말 신기하고 위대하게 느껴져 감탄하면서도, 이들은 이 역사 깊은 곳에 태어나 후손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어 열등감이 올라왔다.


드레스덴 성, 츠빙거 궁전, 젬퍼 오페라 하우스


이 위대한 건축들은 2차 세계대전 드레스덴 공습 때 거의 전소되었고 도시의 80% 이상이 파괴됐다. 그러나 이들은 검게 타버린 시커먼 돌을 그대로 살려 이질감 없이 이전 모습 그대로 재건했다. 그래서 드레스덴의 건축물은 검게 그을려있고 그것은 지난 세월과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프라우엔 교회 앞에는 당시에 파괴된 거대한 사암을 비석처럼 세워두었다. 그 시커먼 돌에 직접 손을 올려보았다. 진한 아픔과 깊은 역사가 느껴져 울컥했다. 전소된 것을 어떻게 재건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 스토리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재건된 프라우엔 교회


1945년 공중폭격으로 프라우엔 교회의 내부 온도가 1000도를 넘어가자 사암으로 지어진 교회가 폭발하면서 붕괴됐다. 양쪽 외벽만 조금 남고 모두 고온으로 녹아내렸으며 시커멓게 그을린 돌덩이들로 뒤덮였다. 전쟁 후에 동독 정부가 교회 재건에 무관심하자 드레스덴 시민들이 재건의 소망을 품고 직접 폐허에서 무너진 돌들을 골라 하나하나 번호를 매겨 간직해 두었다. 잔해를 처리하고 그곳을 주차장으로 만들려던 정부에 맞서며 계획을 철회시켰다.  


독일 통일 이후 드레스덴 시민이 주축이 되어 민간기금을 설립하고 다른 여러 나라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건을 시작했다. 독일 출신의 생물학자 귄터 블로벨은 노벨 의학상 상금을 재건을 위해 써달라며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1993년에 이전 설계도를 바탕으로 재건을 시작해 장장 12년에 걸쳐 이전의 모습을 되찾고 2005년에 봉헌식을 갖게 됐다. 이때부터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는 평화의 상징이 되어 모두에게 열린 교회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드레스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1945년 공중폭격으로 무너져내린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 사진출처 : 나무위키


그 거대한 폐허의 돌무더미에서 무거운 돌을 옮기고, 정성스레 번호를 매기고, 수십 년을 보관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또 울컥해진다. 그 위대함에 대한 감동과 함께, 이들은 왜 이렇게 대단한 것인지 생각하며 또 약간의 열등감이 올라온다. 건축과 문화만 대단했던 것이 아니고, 이들의 시민의식과 신앙심도 가히 대단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이들은 어마어마한 문화를 향유하고 종교생활을 하며 살았구나 열등감을 느꼈다가, 문득 '아니야, 우리나라도 뭔가 있을 거야' 하며 숙소에 돌아와 1700년대 조선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집에 와서는 예전에 남편이 보던 20권 전집인 <조선왕조실록> 만화책을 들춰보았다. 1700년에 숙종 46년.. 영조 52년.. 영조와 정조의 탕평정치... 경복궁과 광화문은 심지어 1395년에 지어졌고,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867년에 재건됐다. 오 우리도 이런 역사가 있어! 고려청자는 심지어 1100년대였다고! 굳이 이러는 것도 열등감인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에도 관심 없던 한국의 역사공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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