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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Sep 06. 2023

스위스 라인강에서, "다시는 강에 들어오지 마!"

강수영의 첫 역사를 쓰던 날

올여름휴가는 스위스에 사는 친언니 집으로 가기로 했다.

폴란드에 처음 왔던 작년에도 언니 집에 다녀왔지만 혼자 어린아이 아이 둘을 데리고 가서 고생을 많이 하고 왔다.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여서 든든했고, 아이들도 그 사이에 제법 커서 여행이 한결 수월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뭘 하면 좋을지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우리가 있게 될 동안의 일기예보를 캡처해서 보내주며 무척 더울 거라고 했다. 33도 어떤 날은 35도. 그 정도면 스위스에서는 전례 없는 더위다. 언니는 강 수영을 제안했다. 언니는 어느새 유럽사람이 다 되어 강 수영도 일상처럼 하고 있었다.  나는 "나 호수나 강에서 튜브 없이 뜰 수 있는지 확인한 적이 없는데, 할 수 있을까?"라고 답했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수영에는 자신이 없는 나였다. 예전에 수영 기초는 배웠지만 최근에 와서야 겨우 자유형 50m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세네 번 저으면 가라앉던 개헤엄을 최근에야 할 수 있게 된 정도였다. 유럽에 있는 동안 강이나 호수에 몸을 담가보고 싶어서 그동안 짬짬이 유튜브 보고 수영장 다니며 생존 수영, 입영, 물에 뜨는 법 등을 연습해 오긴 했다. 하지만 발이 닿은 수영장에서 한 연습으로는, 실전이 가능한 건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무엇보다 물에 자신이 없는 나는 발이 닿지 않는 곳이면 잔뜩 긴장부터 해서 몸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더욱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언니가 스위스 바젤(Basel) 홈페이지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라인(Rhine) 강에서 수영하는 액티비티를 홍보하는 영상이었다. 라인강의 수영이 바젤의 가장 핫한 여름 스포츠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욱 안심이 되었던 건, 다들 튜브 같은 무언가를 가지고 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다들 아무런 구명장비 없이 바다나 강에 뛰어들어 수영하기 때문에 의외였다.


스위스 바젤의 홍보 이미지 (사진 basel.com)


"오 튜브 같은 거 가져가는 사람들 있네! 다행이다!"


라고 했더니 언니가,


"그거 가지고 가야 해. 옷, 신발, 전화기 같은 자기 물품 넣어서 가는 거야"


must have라니 더욱 안심이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독일어로는 Wickelfisch라고 부르는 방수 수영가방이었다. 직역하자면 wrap fish라고 할 수 있는데, 물고기처럼 생긴 커다란 가방에 소지품을 넣고 꼬리 부분을 여러 번 둘둘 말아 닫으면 가방 안에 동그랗게 공기가 차면서 튜브역할도 하고, 안에 넣은 물건들은 방수가 되어 보호된다. 강물살을 타고 2~3km 정도 내려가니 소지품을 가지러 다시 돌아올 필요 없이 이렇게 들고 가서 바로 옷을 입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다.


내가 산 파란 물고기 가방


작년 몰타에서 탔던 페리에서 깊은 바닷속에 뛰어들 때도 나만 유일하게 암링 튜브를 차고 있었고, 그 색 또한 형광주황이어서 꽤나 부끄러웠다. 그런데 형형색색의 물고기 수영가방을 모두가 가지고 들어가면 부끄러울 일도 없고, 또 튜브로 의지할 수도 있으니 안성맞춤! 작은 암링으로도 깊은 바다에서 잘 수영했으니, 이 정도 튜브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수영 잘하는 남편은 강수영은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물고기 튜브가 있으니 언니와 같이 가면 괜찮을 거라며 한껏 들떠있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남편은 강수영은 안 하겠다고 해서 강 옆에 있는 미술관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기로 했다. 나는 미술관의 기념품 숍에서 물고기 가방을 구입했고 호기롭게 언니와 강가로 내려왔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기 전 언니와 신나게 인증샷을 찍었다. 수영복을 미리 입고 왔기에 옷과 신발을 훌훌 벗어 물고기 가방에 넣었다. 첫 강 수영이라니, 오늘은 나의 역사에 남을 날이다!


뒤를 예측하지 못한 호기로운 인증샷


언니는 저 멀리 다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두 번째 다리까지가 목표인데 혹시 힘들면 첫 번째 다리에서 멈춰도 된다고 했다. 다리 밑에 해변처럼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강물살이 세서 갑자기 우측으로 나가기가 어려우니, 도착하기 전 미리부터 오른쪽으로 가며 수영을 해야 올라올 수 있다고 말하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옆에 같이 있어야 돼!"


미리 빠져나가야 한다니 조금 불안했던 나는 언니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했다. 언니는 "당연하지!"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물살에 쓸려가면 멀어질 수도 있으니 알고 있으라고 했다. 한 발 한 발 내디뎌 강에 들어가니 물이 생각보다 엄청 차가웠다. 오 마이 갓! 상체에 물을 뿌려가며 몸을 푹 담갔다. "으아악!" 짜릿한 차가움에 잠시 소리를 질렀다. 조금 지나니 시원함이 느껴졌다. "준비 됐어?"


언니는 가볍게 수영을 하며 출발했다. 나도 발 닿는 곳에서 조금씩 헤엄치며 출발했다. 물고기 가방을 팔에 걸고 개헤엄을 치다가, 물이 발에 닿지 않는 걸 느끼자 나는 갑자기 공포에 휩싸였다. 헉! 순간 나는 물고기 가방을 덥석 껴안았다. 이걸 안으면 몸이 수평으로 펴지며 둥둥 떠내려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몸은 자꾸 수직으로 떨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발을 구르지 않으면 더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발도 수영할 때처럼 굴러지지 않았고, 마치 물속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수직으로 움직여졌다.


이상하게도 나만 제자리였다. 물살은 강 가운데로는 제법 세게 흐르지만 가에는 거의 없었다. 수영을 해서 가운데 쪽으로 나아가야 물살을 타는데, 물살이 없는 가에서 이렇게 힘을 잔뜩 주고 첨벙거리고 있으니 제자리걸음이었다. 내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물살을 타고 가며 즐기고 있었다. 언니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계속해서 빠지지 않으려고 발을 첨벙첨벙 굴러대던 나는 체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조금 더 가면 바위와 돌들이 있는, 해변처럼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었고, 언니는 거기에 서서 기다렸다. 나는 최대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물살을 조금 타보려 했다. 하지만 수영을 해야 하는 나의 두 팔은 물고기 가방을 꽉 잡고 있어서 물살을 가르지 못했고, 오직 두 발만 첨벙 대고 있으니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언니가 있는 곳에 가서 쉴 수 있어!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계속 발을 굴러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언니가 서 있는 곳에 거의 다 왔는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았다. 발이 아직 닿지 않아 일어서지도 못하고 조금씩 떠내려갔다. 언니가 손을 내밀고 나도 손을 쭈욱 내밀어 겨우겨우 잡았다. 그리고 나는 물 밖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헉. 헉. 헉.


다들 잘만 떠다니는데... (사진 basel.com)


잠시 앉아 쉬었다. 언니는 "힘들면 여기서 나가도 돼."라고 했지만 나는 아쉬워서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해 왔던 라인강 수영이다. 그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자유롭게 떠내려가는 그 느낌을 꼭 느껴보고 싶었다. 나는 아직 강 가운데로 가보지도 못하고 가에서 혼자 물고기 가방을 붙잡고 삽질만 한 것이다. "아니, 더 가볼래. 아까 갑자기 발이 안 닿아서 겁을 먹어서, 너무 힘이 들어가서 그랬던 것 같아. 얕은 데부터 천천히 수영하면서 가면 괜찮을 것 같아" 어제 언니와 다른 강변에서 아주 잠시 수영을 했었다. 거긴 발이 닿는 곳이었지만, 그런 느낌으로 힘 빼고 살살 수영을 하다가 힘들면 물고기 가방에 살짝 의지해서 가면 될 것 같았다. 정말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출발 후 1분도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물고기 가방의 끈을 몸에 걸고, 가방의 한쪽 끝만 잡은 채 살살 수영을 시작했다. 물살을 타기 위해 가운데를 향해 조금 나아갔다. 하지만 물이 깊어진 것을 느끼자 내 몸에는 또 힘이 들어갔다. 물고기 가방을 두 손으로 잡았다. 내 머리로 예상한 것은 이걸 두 손으로 발을 살살 구르면서 물살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 몸은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떨어지고, 그나마 발차기를 계속하지 않으면 점점 더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나는 물고기 가방 위로 더 뛰어올라 꽉 품에 안고, 그렇게 힘이 들어가니 가방이 뒤집힐 것처럼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달리기 같은 발차기로 막고 있는 것이다. 죽기 살기로 힘을 줘 매달려 있으니 튜브가 뒤집히려고 하고, 그것을 막으려고 다리가 바등대고 있고, 그러다 체력이 다 방전되어 가는 악순환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몸부림을 치고 있자니 순간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한 달 전쯤, 아이들과 수영을 할 때였다. 방학을 맞아 거의 매일 수영을 하니 첫째가 물에 제법 익숙해지고 수영을 배우고 싶어 했다. 느낌을 조금 가르쳐주려고 두 손으로 아이의 몸을 살짝 떠받쳐서 둥둥 띄워주고 있는데, 아이는 깊은 물에 긴장해서 튜브에 자꾸 올라타려 했다. 온몸에 힘을 주어 튜브를 잡으려 하니 튜브가 자꾸 뒤집히려 했다. 그때 내가 말했다.


"수아야, 힘 빼. 힘을 빼면 우리 몸은 저절로 뜨게 돼있어"


그래도 아이는 힘을 빼지 못하고 아등바등 튜브를 잡으려 했다. 나는 힘을 빼라고 몇 번이고 거듭해서 말했었다. 아... 이게 그렇게 어려운 거였구나. 나도 못하는 것을 너에게 그렇게 쉽게 말했구나. 힘을 빼면 저절로 뜬다고? 정말??! 힘을 좀 빼보려고 물고기 가방에서 내려와 수영을 한 번 시도해 봤다. 하지만 이미 겁을 먹은 내가 갑자기 수영을 잘할 리 없었다. 몇 번 허우적 대다가 깊은 물도 무섭고 수영할 체력도 없어져서 다시 물고기 가방을 움켜쥐고 둥둥 떠다녔다.


그 사이 난 강의 한가운데로 내몰려져 있었고, 물살은 무척 거셌다. 언니는 그다음 설 수 있는 강가에서 나를 기다렸지만, 나는 그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아까 그렇게 타고 싶어 했던 물살을 타고 나는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도와줘!"라고 언니에게 말했지만 언니는 미소 띤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위급한 상태를 언니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지? "진짜로!!"라고 다말했지만 들리기나 했을지. 이미 나는 언니와 무척 멀어졌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물고기 가방에 매달려 위를 바라보니, 라인강을 낀 바젤의 모습이 무척 평화롭고 예뻤다. 내 옆으로 할머니 두 분이 유유자적 수다를 떨며 지나가고 계셨다. 저들은 내가 곤경에 처했다는 걸 알까.


라인강의 이 다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basel.com)


'에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계속 떠내려가면서 즐겨봐?'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떠내려가면 강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까도 해봐서 알지만 자력으로 이 물살을 가로질러 강가로 빠져나가는 것은 내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강한 물살에 휩쓸려 왼쪽에 더 가깝게 떠다니고 있었는데, 왼쪽에는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상황판단이 됐다. 나는 이제 체력이 방전됐고, 수영을 하지 못한다. 이 물 밖으로 혼자 빠져나갈 수 없다. 나는 언니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와버렸다. 이제는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주변을 살폈다. 옆에 가는 어르신들은 나를 구해줄 체력은 안 되겠지. 저기 강변에 앉아있는 선글라스 낀 저 남자? 내가 이미 떠내려가고 있어서 여기까지 오지 못할 거야. 아까부터 내 10미터 정도 앞을 둥둥 떠가며 놀고 있는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가 왠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을 건네지? 너무 다급하게 'Help'라고 하면 겁을 먹을 수도 있으니 인사로 시작하자.


"Hello!"


손을 들어 그들에게 인사했다. 강물 속에서 헬로라니. "Can you help me?"라고 이어 말했다. 꽤 멀리 있어서 아마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기보다, 손을 들며 뭐라고 말하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난 최대한 침착하려고 했지만 "hello" 하고 손을 든 순간 그 남자는 이쪽을 향해 수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살을 가르기는 쉽지 않았을 터. 반대쪽으로 몸이 나가지 않자 이번엔 여자가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옆으로 가로지르며 내가 오는 방향에서 나를 기다렸다.


"Oh, thank you so much. 저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수영을 못하고 이제 힘도 없어요"


그러자 돌아오는 그녀의 말,

"You can't swim???!!! 그런데 강에 들어오면 어떡해!!"


그녀는 내 나이 정도, 혹은 나보다 조금 많아 보였다. 위험한 짓을 한 동생에게 화를 내는 언니처럼 진지하고 무섭게 말했다. 그 걱정이 기분 나쁘지 않았고, 그저 고마웠다. 물고기 가방을 잘 잡고 있으라고 말하며 그 가방을 잡고 힘차게 강 바깥을 향해 열심히 헤엄쳤다. 든든한 언니였다. 뒤에서 남자가 한 번씩 나를 세게 밀어주며 거들었다.


강물살이 꽤 빨라서, 그 수영 잘하는 두 커플이 나를 도왔음에도 강 중심에서 강가로 빠져나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우리는 몇몇 대화를 나눴다. 주로 나를 혼내고 나는 해명하는 내용이었다.


"수영을 못하면 강에 들어오면 안 돼. 물이 얼마나 빠른데!"

"미안해요. 조금은 할 줄 알았는데 강은 처음이라. 이 물고기 가방이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이건 널 절대로 지켜줄 수 없어"

"구해줘서 고마워요. 내 생명의 은인이에요"

"다시는 강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해!(No more river in your life! Promise me!)"

"네 약속할게요!(I promise!)"

(왜 동등한 영어대화를 존댓말과 반말로 번역해서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분위기 상 이게 가장 자연스럽다)


마치 타이타닉 영화에서 바다에서 동사하는 잭을 보며 로즈가 "I promise"라고 하는 결의에 찬 대사처럼, 그녀는 굳은 약속을 받아낸 후에 나를 구해주었다. 강가에 다다르자 가방을 먼저 던지고 강둑의 쇠사슬을 잡고 올라가라며 두 커플이 끝까지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조금씩 떠내려가는 두 사람에게 나는 두 엄지를 지켜 세워 높이 들며 "You saved my life!!!" 라며 큰 소리로 외치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언니를 만나러 반대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언니가 이미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언니도 당황해서 도움을 구해야 하나 생각하던 중 옆에 있던 커플이 나를 도와주는 것을 발견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마 다리에 가려서 잠시 내가 안 보였는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파란색 물고기 가방만 물에 둥둥 떠있고 그 방이 물에 잠겼다가 올라왔다가 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어머 얘가 물속으로 빠졌구나 싶어 사색이 됐는데, 어린 꼬마가 물에 잠수했다 올라왔다 하며 놀고 있는 것이었다고. 내가 죽는 줄 알았다면서 아직도 심장이 빨리 뛴다고 했다. 수영 거리를 기록하려고 차고 있던 언니의 애플 워치를 보니 조금 전의 심박수가 184까지 올라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물에서 빠져나와 그늘에 걸터앉았다. 나는 얼마나 체력이 떨어졌고, 떠내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구해줬는지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언니는 조용히 하고 일단 좀 먹으라며 물고기 가방에 챙겨 온 사과를 꺼내주고 믹스커피를 타주었다(이 많은 걸 다 넣고도 둥둥 뜨는 것이 신기한 물고기 가방!). 커피를 건네는 언니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나도 이제야 긴장이 풀린 건지, 물속에서 내내 발차기를 하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때 '뿌우웅'하는 경적소리를 내며 커다란 화물선이 강을 지나갔다. "우와, 너 강에 있을 때 저 화물선 지나가면 어쩔 뻔했어. 수영도 잘 못하는데 강에서 수영하자고 해서 내가 미안하다 야." 언니도 내가 이렇게까지 허덕일 줄은 몰랐겠지. 나도 몰랐으니까.


이토록 평화로운 강이 그렇게 무섭게 보일 수 있다니


죽다 살아나 감사한 마음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미술관을 향해 걸어갔다. 강물에서 빠져나와 위에서 다시 그 라인강을 보니, 그렇게 평화로워 보이던 강물살이 무섭게 느껴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둥둥 떠내려가며 웃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위대해 보인다. 어린 친구들부터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유유히 즐기고 있는 저 강수영이 내게 이토록 위험한 일이란 말인가. 가장 기대했던 강수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쉽고,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수영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육의 문제인가 하며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가, 지금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겸허해지기도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자극이 너무 커서 경험 전과 후가 달라지는 경험을 마주할 때가 아주 가끔 있는데 이것도 그렇다.


그 후로 다른 도시에서도 강 물살을 보면 무서워졌다. 최근 몇 달 수영장에 다니며 이제야 수영에 조금 진전이 있었다 생각했는데, 물에 식겁했으니 이제 얼마나 더 오래 걸릴지 모르겠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난 언제쯤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를 구해준 스위스의 그녀에게 다시는 강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아니,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영을 끈질기게 배울 것이다. 몇 킬로를 수영할 수 있는 강철 체력도 기를 것이다. 그리고 안전하게 이 물살을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때 기필코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도 이해해 주겠지!

  

첫 강 수영은 어쨌거나 그렇게, 내 역사에 아주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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