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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18. 2022

프랑스 파리에서, 나의 로망은 어디에

침대 속에

파리를 처음 찾은 건 9년 전, 우리가 결혼하던 해였다.

우리는 늦은 여름 휴가지로 친언니가 살고 있던 스위스를 선택했고, 그때 기차를 타고 파리에 1박 2일로 잠시 다녀왔다. 나는 파리에 가기 전 내가 가지고 있던 기대를 한껏 부풀리기 위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며 더 큰 낭만을 품고 갔다.    


파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에펠탑을 찾은 날은 하늘이 파랬고, 주변 공원의 잔디는 초록이었다. 우리는 잔디에 누워 에펠탑을 바라보았고, 남편은 예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골목 빵집에서 사 온 바게트 샌드위치와 마카롱을 맛있게 먹었고, 그 주변을 걷다가 우연히 화가의 거리를 발견해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마음에 쏙 드는 파리의 그림을 하나 샀다.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모네와 고흐의 그림을 한참 바라봤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둘러보았고, 헤밍웨이가 자주 들었다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들렀다. 그것도 신혼 3개월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으니 더욱 행복했을 터였다. 1박 2일이라는 짧고 아쉬운 여정을 마치고 밤기차를 타야 했다. 그때부터 파리에 대한 로망은 더더욱 크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2013년 가을의 파리


작년에 남편의 폴란드 발령이 결정되고 나서 기대되는 것 중 하나는 단연 파리였고, 폴란드에 온 후에도 언제가 좋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독일이나 체코처럼 운전해서 휙 떠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서 낭만 파리를 즐기고 싶었지,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그 도시를 헤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여름휴가 외에는 하루도 쉴 수 없었고 아이들은 언제나 내 몫이었기에, 막상 유럽에 와도 파리는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파리 여행 제안은 언니가 먼저 했다. 언니네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모두 함께 10월에 여행을 하기로 했었고, 어디로 갈지를 계속 고민하던 중이었다. (언니는 20대부터 스위스에 살고 있어 늘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 내가 폴란드에 사는 동안 적어도 분기에 한 번은 꼭 보자고 약속했다.)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베니스? 이런저런 후보가 거론되었지만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언니가 어느 날 “파리는 어때? 애들이 디즈니랜드 가고 싶대! 너도 파리 가고 싶어 했잖아. 모두에게 좋지 않겠어?” 우아한 파리 여행은 어렵겠지만, 아이들이 디즈니랜드에서 신나면 그걸로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좋아!” 그렇게 바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7명이 다 함께 머물 디즈니랜드 근처의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파리에서 함께 보내는 4일. 이틀은 디즈니랜드에서, 이틀은 파리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까 애들 에펠탑에서 사진은 찍어줘야 하지 않겠어?” 암, 그렇다. 가봤던 곳이지만 에펠탑은 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숙소에서 시내가 무척 멀었다. 서울로 치자면 우리는 용인 에버랜드 근처에 숙소를 잡았고, 거기서 아이 넷과 유모차를 밀며 N서울타워를 찾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차를 먼저 타고 시내에 들어가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다. 아이들이 지하철을 너무 오래 타니 힘들고 배고플 것 같아서 몇 정거장 미리 내렸는데 마치 삼성역 근처처럼 큰 비즈니스 건물들만 있고 카페도 편의점도 찾을 수 없어 한참을 헤맸다. 애들은 감기에 걸려 콜록대는데, 아침 날씨도 무척 쌀쌀했다. 결국 7명이 함께 탈 수 있는 커다란 밴 택시를 타고 에펠탑 근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보채는 두 아이들 덕분에 나는 점심 맛이 어땠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벌써 스무 살, 열일곱 살인 두 조카가 잠시 아이들을 봐준 덕분에 언니와 나는 커피 한 잔과 달콤한 티라미수를 먹을 수 있었다.


에펠탑은 공사 중이어서 허름한 천을 걸치고 있었고, 이전과 다르게 탑 주변에 입구를 설치해 두어 돈을 내고 입장하지 않으면 타워 밑을 자유롭게 거닐 수 없었다. 초록 잔디가 가득했던 에펠탑 바로 앞 공원은, 또 어떤 상업시설을 준비 중인 건지 시커먼 흙으로 메워져 썰렁했다. 그래도 우리는 아이들과 신나게 사진을 찍었고, 아이들은 달콤한 솜사탕을 하나씩 들고 행복해했다. 공원의 아저씨가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내자 바람에 날리는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며 깔깔거렸다. 베이비시터로 열일해 준 두 조카들에게는 자유여행의 시간을 주었고 언니의 7살 아들과 6살, 4살인 우리 딸들이 남았다.


에펠탑보다 비눗방울에 더 신이 난 아이들

     

일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보트 타고 구경하면서 집 방향으로 갈까?”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보트는 왕복이어서 원점으로 돌아와야 했고, 중간에 내릴 수 있는 보트도 있었겠지만 몇 킬로만 걸었을 뿐 찾지 못했다. 오후가 되니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아이들은 축축 쳐지고, 나는 힘껏 쌍둥이 유모차를 밀고, 언니는 무거운 아들을 안고 걸었다. 자판기에서 물 하나 사려해도 내 신용카드와 동전을 거부했다. “카페 가서 애들 물이라도 먹이고 좀 쉬었다 가자” 하지만 가까운 곳에 카페가 없었고, 검색해서 가면 닫았거나, 카페가 아닌 바(Bar)여서 아이들은 출입금지이거나, 손님이 꽉 차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냥 택시 불러서 지하철역까지 가자” 어렵게 우버로 택시를 불렀는데 우리가 다섯 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애들이 워낙 작아서 다 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불친절한 택시 기사는 앞 좌석에 놓인 자기 짐을 치워주지도 않고 승차를 거부했다. ‘아이가 잠들었어요, 바로 앞에 역까지만요. 아기니까 안고 탈게요’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승차 취소에 대해 6유로의 벌금까지 결제되었다. 이런 젠장.     


그렇게 헤매고 거부당하며 시간을 허비하다 퇴근시간이 되었다. 기차에는 사람이 미어터졌고, 그 속에서 쌍둥이 유모차와 두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사수하느라 진땀을 뺐다. 첫째는 피곤해 2층으로 가는 계단에 혼자 쪼그리고 앉았다. 시내에서 벗어나자 하나 둘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아이들은 서로 엄마 옆에 앉겠다고 울며 싸웠고, 졸다가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의 이마를 만져보니 뜨겁게 열이 나고 있었다. 휴.. 내가 두 애들을 데리고 여기를 왜 왔을까. 늘 기대하고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지의 한 복판에서 드는 생각,

내가 미쳤지, 애들 둘을 데리고 여기를 오다니.’     


집에 있었으면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온종일 여유를 누렸을 텐데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도 억울했지만, 그보다 더 억울한 것은 내 마음속 파리의 로망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었다. 나는 지난 수 년동안 파리와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었다. 로맨틱한 재회. 그런데 무거운 두 아이를 태워 잘 굴러가지도 않는 휴대용 쌍둥이 유모차를 끄느라 두 손목은 너덜너덜해졌고,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기도 어려웠으며, 에펠탑도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수 중이어서 예쁘지 않았다. 눈앞에 있지만 탈 수 없는 보트, 생수 하나조차 내 맘대로 살 수 없는 자판기, 승차 거부하는 불친절한 기사, 열나고 기침하는 아이들. 이건, 내가 꿈꿔왔던 재회와 정반대의 것이었다. 나의 우아한 로망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마치 다시 만나서는 안 될 첫사랑을 보고 나서는 모든 로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여기 오지 않는 게 나았던 것일까. 아침에 나와 에펠탑에서 사진 하나 찍었을 뿐인데 숙소에 들어가니 저녁이었다.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큰아이가 열이 나고 밤새 기침을 하는 바람에 곁에서 계속 물 주고 열을 체크하며 간호해야 했고, 그래서 둘만 재우려고 했던 작은 더블침대에서 나까지 끼어 불편하게 잤다. 그렇게 며칠 밤을 뜬 눈으로 보냈는데 셋째 날 밤 아이의 기침이 잦아들고, 둘 사이에서 여전히 불편했지만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전날 디즈니랜드에 다녀왔던 터라 모두들 늦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수아와 주아가 차례로 깨서 씽긋 웃었다. 귀여워서 꼭 안아주자 내게 뽀뽀를 해준다. 그 부드러운 볼과 목 사이에 나는 내 얼굴을 넣고 마구 비볐다. 이 아이들의 살갗. 이 촉감. 냄새. 수아는 오랜만에 컨디션이 좋아 쫑알쫑알 댔고, 주아는 늘 그랬듯 내 귀를 만지며 내게 마구 비벼댔다. 양쪽에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끼고 아침을 맞이하는 이 기분. 이 행복. 살아있다는 느낌. 온전하고 가득한 느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함이 느껴졌다.


더없이 꽉 차게 행복한 느낌은 에펠탑도 디즈니랜드도 아닌 바로 침대 속에 있었다. 좌 수아 우 주아의 사이에서,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침부터 생글생글 웃고 조잘조잘 떠드는 귀요미 두 딸.


파리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그 작은 방, 작은 침대에서 함께 뒹굴고 비비던 아침이다. 어쩌면 집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장면인데, 여행에 가서야 비로소 그 행복이 크게 느껴진다. 어쩌면 일상에 무뎌져서 놓치고 있는 그 보석 같은 순간들을 발굴하기 위해 우리는 굳이 여행이라는 걸 떠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의 행복이 무뎌질 때면, 또다시 가방을 싸자.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두 꼬맹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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