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주 『도화도화』
요즘, 라이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난 호기심도 많고 남한테 관심도 많은 사람이라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하는데, 유독 도드라지는 몇몇이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남몰래 경쟁상대로 점 찍어 놓고 쟤보단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했다. 그래야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에 와서야 라이벌에 대해 생각하니, 예전에 그랬던 행동이 꽤나 쓸모 없이 소모적인 일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진지하고 내겐 큰 일이었으니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경쟁 상대로 찍어놓은 사람하고는 원수가 되거나 절친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물론, 데면데면하며 적당히 서로를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그런 경우는 친구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원수라고 표현해도 크게 다를 바 없겠다.
경쟁 상대로부터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한 동경심을 느꼈다. 동시에 그가 가지지 못한 걸 내가 가짐으로써 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 친구들 중 몇몇은 유치하다 했으나, 당시에 난 남을 통해 절망하고 남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싫지만 사실이니 딱히 찌질하다는 말에 받아칠 건 없었다. 또한 절친이 된 경쟁 상대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다양한 경쟁자들을 상대하면 느낀 공통점이 있는데, 내가 맞서야 할 건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거다. 절친이 된 경쟁자들은 내가 정돈하지 못한 마음, 미쳐 들여다보지 못했던 부분, 닿지 못했던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결국 마지막엔 경쟁이고 말 것도 없이 서로가 가까워지게 돼 절친이 되고는 했다.
이 정도의 해피엔딩을 바라고 원수들에게 다가가보았으나 결말은 좋지 못했다. 그들을 상대하며 갈등을 빚을 때 나를 탓해봤자 해결은 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두 라이벌이 싸웠다. 절친이 된 존재들처럼 더 다가가보라는 마음과 적당한 선에서 끊어버리라는 마음이다. 비단 이 상황에서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이 두 마음이 싸우고는 했다. 더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 이 두 마음은 지금도 내 안에 라이벌로 남아있다.
서정주의 도화도화를 읽고 왜 난 라이벌이 떠올랐을까? 이번 수업을 통해 시를 읽을 때 중요한 포인트를 배우게 됐는데, 그게 외재적 감상법이다. 사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읽는 것에 익숙했던지라 작가의 생애를 훑고 쓰여질 당시의 나이와 상황까지 대입해보며 분석하는 학우들의 방법에 놀랐다. 난 개인적 경험에 비춰 감상하는 일이 많았는데 갇혀있는 감상법을 깰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그 방법으로 도화도화를 다시 읽어보았다. 어쩌면 서정주 안에 있는 두 개의 자아 중 자신이 선택한 자아를 가지고 선택하지 않은 자아를 죽이러 가는 과정을 담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마지막 연에서는 독립운동의 자아와 친일의 자아에서 고민하다 하나의 자아를 선택한 화자가 나머지 자아를 죽이러 가는데 망설이는 것으로 느껴졌다. 굳게 결심하지만 다른 선택지를 맘 놓고 포기할 수도 없는 자신에 대한 원망도 느껴졌다. 짧은 분석력으로 이 정도에 그쳤지만 확실히 기존과는 다른 부분이 보이기는 했다.
외재적으로 해석하려니 왠지 정해진 정답을 찾아야만 할 거 같아 힘들었다. 그래도 그걸 통해 내 안의 두 자아가 싸웠던 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두 마음은 자주 싸워 날 고민에 들게 한다. 이 시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이 라이벌에게 전하고 싶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기 힘들고, 선택을 한 대도 다른 하나를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노랫말 삼아 담아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