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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n 20. 2019

그늘에선 꽃이 필 수 없다

-이용악 『고향아 꽃은 피지 못했다』

항상 따뜻한 날씨에 구수한 사투리, 많은 노인들과 어딜 가든 깔려있는 논. 철마다 온 동네를 감도는 천리향 향기. 내 고향 전라남도 강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중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보냈지만 부모님이 강진에 계시고 나도 자주 오다녔으니 고향은 여전히 강진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난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게 남쪽 동네는 너무 좁았고 내가 모르는 더 큰 세계가 항상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난 그 세계들이 너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곳에서 놀고 싶었고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결국 주위의 만류를 이기고 상경해 더 큰 곳으로 대학을 왔다. 그 큰 세계는 내 기대 이상이었다. 전혀 모르는 것들 천지였고 신기한 경험 투성이었다. 뭐든지 재밌었고 내겐 첫 번째였다. 하지만 그만큼 실수도 많았고 상처도 컸다.

모두가 겪는 성장통이지만 난 항상 나에게만 달라붙은 과녁이 크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살면서 화살을 맞는다지만 왜 나만 이렇게 더 많이 아픈 거지? 그럴 때마다 고향을 떠올렸다.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크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곳. 어쩌면 가장 안정적인 곳, 강진. 그런 마음이 커질 때면 '서울 이곳은' 노래를 들으며 고향을 찾았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뿐이야.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확실히 강진은 안정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김치를 매일 먹을 수 있었고 어떤 걸 먹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돈에 쪼달릴 필요도 없었다.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서울과는 달리, 고향은 그늘이었다. 눈살 찌푸리지 않아도 모든 게 확연히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난 확실히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그랬다. 잠시 편하다가 그뿐이었다. 술 취한 아빠의 모습이나 엄마랑 다투는 그 모습을 보는 게 지겨웠다. 익숙해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내가 받는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였다. 꼭 그것뿐이 아니더라도 다시 올라가고 싶었다. 그간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을 더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속구 쳤다. 난 항상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고향에서 발을 돌려 다시 올라가고는 했다.

시를 읽고 '고향아 꽃은 피지 못했다'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니 편한 고향에 있으면 결국 자기를 꽃피우지 못할까 봐 두려운 화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거 아닐까? 성공해서 자신의 꽃을 만개하고 고향에 돌아가고픈 열망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 그늘처럼 편하고 익숙한 고향이 그립지만 그곳에 안주하기엔 마음에 있는 열망이 아직은 너무 뜨거웠던 게 아닐까? 읽는 내내 나의 모습 같아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하루는 구겨진 옷을 다림질했다. 옷의 주름을 펴는 게 이렇게 까다로운 일인지 그제서야 알았다. 방을 정리하는 것도, 샤워실의 물때를 닦는 것도, 빨래와 설거지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일들이 어렵지 않은 고향이 나의 꽃을 피워주지는 않는다. 고향은 그늘 같아 내게 안식처지만 그늘에서 꽃은 필 수 없으니까. 가끔 엄마 아빠는 우리 남매에게 말한다. 강진 와서 살라고. 그럴 때마다 고민하는 누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난 아직 내 꽃이 무엇인지, 그 향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고향으로 내려간대도 그것만은 확인해야겠다.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탕아로 살기로 결정했으니 끝까지 가본 후에야 돌아서겠다. 글을 마치며 오늘도 '서울 이곳은'을 듣는다. 난 내 꽃을 확인하기 전까진 돌아서지 않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휴식이란 그런 거니까. 힘든 건 모두가 다를 게 없지만.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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