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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n 20. 2019

거울 속의 나, 참 못생겼어

- 서정주 『자화상』

'좁고 어두운 방. 거울 속에 나. 그늘진 얼굴. 참 못생겼어.'

늘 그렇듯 내 방에는 이소라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고 난 눈을 떴다. 잠을 잔 건지도 모르겠는 수면을 반복하는 날이 2개월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즈음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잘 나가는 주변 친구들을 질투하고 있었다. 난 이루는 것도 성취해내는 것도 없는데, 잘난 친구들을 보면 속이 뒤틀렸다. 내가 생각해도 찌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서 주변의 기대에 부담스러워하고 있었고 날 칭찬하면 괜히 놀리는 거 같아 칭찬해준 사람을 미워했다. 확실히 엉망이었다. 나의 결점을 들킬까봐 초조했고 사람들이 내게 실망할 거 같아 불안했다. 내가 바라는 쿨한 모습따위 내게 없었다.


 난 이 불안에 잠식 당했단 걸 깨닫고, 방으로 들어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게 커튼을 쳤다. 꼭 필요한 연락이 아니면 받지 않았고 아침에 자서 저녁에 일어났다. 무슨 일 있냐는 친구들의 연락이 내겐 더 괴로웠다. 약한 모습을 들키는 거 같았으니까. 하루는 꼭 나가야할 일이 있어 낮에 밖을 나섰다. 내리쬐는 햇빛에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나 혼자만 못나 보이게 느껴졌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일을 급히 마치고 다시 방에 들어왔다. 까만 방에 어둑하게 켜져있는 초 하나. 아, 내 방이다. 그제서야 안정이 됐다. 침대에 누우려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정말 초라했다. 참 못생겼다. 못생긴 날 다잡기 위해 다음 날부터 바로 상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선생님, 사람들한테 저를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아 두려워요. 전 못난 사람인데, 저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는 사람들이 미워요. 선생님 아무도 저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 같아요. 그거보다 더 무서운 건 저도 그 누구를 사랑할 수가 없을 거 같아요. 끊임 없이 불안하고 매일 우울해요. 사람들에게 가면을 벗을 수가 없어요. 어떡하면 좋죠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는 구절을 읽고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병든 수캐마냥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살아왔다는 그의 고백이 쿨해보였다. 스무살 때 실패에 대해 친구와 말한 적이 있었다. 난 온갖 실패를 다 경험하고 나락으로 떨어져보고 싶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실패가 두렵다고 했고, 난 그가 어리다고 생각했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져봐야 올라가는 기쁨을 알 테고 그게 더 멋져보였으니까.  하지만 스물 셋이 넘어서야 그 친구가 했던 말의 무게를 깨달았던 거 같다.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건 추락의 과정과 추락하고 나서까지의 시간도 온전히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 스물 셋에 격정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자화상으로 표현한 그의 시가 더 와닿는 이유가 있다면 내가 스물 셋 즈음에 나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일까? 


‘내가 사랑하지 않는 본인의 모습까지도 인정하셔야 해요.’ 상담 치료에서 선생님이 말한 것 중에 가장 크게 남아있는 말이다. 지금까지 난 나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약해 보이고 하나도 멋있지 못한 그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내 자신에게 들킬 때면 한참을 괴로워했다. 남을 질투하거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애가 불행을 겪으면 고소해하기도 했다. 남의 불행에 안도감을 느끼며 날 위로하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난 계속 뉘우쳤고 다시는 이런 찌질한 마음 가지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언젠가 그 모습이 다시 나타날까 두려웠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의 도움으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모습까지 인정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난 뉘우치지 않기로 했다. 내 감정과 모습에 솔직해지고 받아들이기로 다짐한 후 난 그제서야 방의 커튼을 걷을 수 있었다. 


작가는 가도가도 세상이 부끄럽기만 했고 결국 그 무엇도 뉘우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데, 난 그 과정이 궁금하다. 혹시 나처럼 본인이 싫어하는 자기의 모습을 만난 건 아닌지. 그랬다면 어떻게 이겨내고 그런 결정을 한 건지. 스물 다섯 살의 나도 힘든데 스물 셋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시를 읽고 괜히 나의 자화상도 머리 속에 그려보게 된다. 여전히 방은 어둡게 해놓지만 오늘부터는 거울 속의 나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저번보단 덜 못생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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