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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n 24. 2019

사람은 증발해도 향기가 남는다

18년 전, 먼저 떠난 그 아이를 기억하며

'실종된 김 양은 이날 같은 반 친구 A군과 S 여고 입구 횡단보도까지 함께 걸어갔다고 한다.’


 18년 전에 넌 김양, 난 A 군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날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난 이제 20대 중반이 됐지만 넌 여전히 ‘실종된 김양’이다.



오랜만에 널 떠올렸던 날은 아마 내가 스물한 살 때였을 것이다. 2014년 즈음 봄에, 지루했던 강의를 마치고 봄 날씨를 맞으러 학교를 나섰을 때였던 거 같다. 그때 캠퍼스에서 천리향 향기가 났다. 이 향기를 맡으면 난 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그리고 네가 떠오른다. 


천리향은 그 냄새가 천 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 유래는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넌 천리향 향기를 타고 천 리를 넘어 내게 스며들었으니까.


김양, 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와 듣는 걸 좋아하는 너는 죽이 잘 맞았다. 우린 천리향이 가득한 하굣길을 항상 같이 걸었고 학교 다니는 내내 함께했다.


약속을 할 때면 항상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던 넌, 그날도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와!” 

우린, 교복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학교 근처 횡단보도에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후 헤어졌다. 하지만 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다음 날 너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다음 날도 나오지 않았다.


네가 이틀째 결석하던 날 밤, TV 뉴스에는 우리 학교가 나왔다. 난 우리 학교가 TV에 나와서 철없이 신기해했지만, 어른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하교 시간이면 어른들이 항상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에 가곤 했다. 그 어른들은 네가 증발했다고 말하곤 했다. 또한, 사라지고 나서 협박 전화 한 통 없는 것 보니 이미 죽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천리향 향기가 나는 하굣길을 걸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고는 했다. 

“모르는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하면 절대로 따라가지 말거라”

하지만 넌, 모르는 누군가를 따라갔는지 그 길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난 지금 너와 함께 걷던 하굣길로부터 천 리가 넘는 곳에서 지내고 있다. 천 리까지만 전해진다던 그 천리향 향기는 봄마다 이곳까지 전해진다. 네가 증발한 지 18년이 지났지만, 너와 맡던 그 향기는 증발하지 않고 십 수년째 내 코를 자극한다.


봄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너의 이름을 검색했다. 너의 실종을 알리는 옛날 기사에는 네가 증발하기 10분 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실종된 김 양은 이날 같은 반 친구 A군과 S 여고 입구 횡단보도까지 함께 걸어갔다고 한다.’




스물여섯 살이 된 내가 여덟 살짜리 널 떠올릴 때면 천리향 향기가 난다. 네가 증발한 곳에서부터 천 리가 넘는 여기에서 나는 18년 된 그 잔향을 곱씹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여덟 살짜리 A군이 되고, 넌 천리향의 향기 가득 품은 김양이 되어 나와 함께 하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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