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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l 04. 2019

그래도 난 친절한 사람이 좋다

'친절할 필요 없다'며 살지 않아야지

첫 출근 날, 지문으로 열리는 사무실 입문을 열지 못해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마케팅 팀으로 출근하기로 한..."

"아, 네."

삐빅- 그 직원은 지문을 찍고 문을 열었다. 뒤에 서있는 나를 위해 문을 잡아준다던가 그런 배려는 없었다. 그래, 사회는 차갑다고 그랬어. 이런 것에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난 어색한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A입니다!"

내 바로 앞에 앉은 직원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멀리 앉은 앳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안경 위로 날 힐끔거릴 뿐이었다.

"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저 멀리서 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누군가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대답한 것이다.

아, 뭐지. 이건 아닌데. 내가 예상했던 수많은 시나리오 중 이건 없었는데.


시나리오 A.

'아, 여기는 신입사원 A 씨예요. 자, 다들 인사 나눠요- 이쪽은 B고요, 이 분은 C예요. 이렇겐 같은 팀이니까 앞으로 잘해봐요!'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소개해주고, 팀끼리 모여 인사를 나눈 후 숙지해야 할 것들을 인수인계해주는 그림을 상상했다. 그러면 난 웃으면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 뭐 이런 인사치레를 하고 내 자리를 배정받는 그런 장면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겠지.


하지만 직장에 친절한 사람만 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두 번째 시나리오도 구상했다.


시나리오 B.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를 쳐다보는 듯한, 그런 관심 없는 표정으로 날 보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난 뻘쭘하게 웃으며 날 소개한다. 사람들은 무표정이지만 그래도 '일 제대로 못하 거나 싸가지 없으면 조져버려야지-'라고 벼르고 있는 듯한 반응. 난 자대에 처음 배치된 신병이 되어 그들의 맘에 쏙 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래 오케이. 이 정도 마음가짐이면 어떤 상황이 와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만 보는 이런 상황 말이다.


이윽고 귀찮은 듯한 표정의 대표가 자신의 방에서 나와, 나를 빈 책상으로 데려가 앉아있으라고 말했다. 놓여 있는 맥북. 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초기화 작업을 하고 계정을 만들었다. 정말 놀랍게도 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1시간 동안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거나, 와이파이 비번이 어떻다거나, 몇 시까지 뭘 하라거나 이런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카톡을 하며 1시간 반쯤 시간을 죽였을까, 내가 들어오자마자 내 앞에 있던 그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아, 드디어 내게 말을 걸어주는구나. 정말 좋은 사람이다. 너무 반갑다. 다짜고짜 내게 욕지거리를 한다고 해도, '말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반가움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게 말했다.

"마케팅 팀이시죠? 네, 저는 마케팅 팀 팀장 B이구요. 조금만 더 앉아 계세요."

아, 팀원이 새로 왔는데 팀장이란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1시간이 지나서야 말을 걸다니.

이건 정말로 내가 각오한 시나리오와는 영 딴 판이었다.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을 무렵, 난 적당히 그들과 인사를 하고 바로 업무를 배당받았다. 첫 출근 날, 팀장은 '일을 어디까지 끝내고 퇴근하라'는 말도 없이, 자기 먼저 가버렸고, 나와 내 동기는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뭐, 나의 첫 출근 기억은 이 정도이다.




우린 수많은 불친절을 맞닥뜨리며 산다. 그걸 맞닥뜨릴 때,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게 정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 단지 '친절하지 않은 것'인지, '무례함'인지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린 이런 고민을 해야 할까.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다 여기고, 친절을 베푼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걸까?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어느새 세상을 가득 채워버린 건가?




내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의 일이다. 막 들어온 나는, 커피를 제조하는 법을 몰라서 설거지를 하거나, 주문을 받고 이를 포스에 입력하는 일을 한동안 맡아서 했다. 손님이 없을 땐 문밖에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는 했다. 그러다 나보다 훨씬 오래 근무한 알바가 내게 말했다.

"멍 때리지 말고, 포스 안에 메뉴 위치 외워요."

그리고 쓱 자기 갈 길 갔다. 그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근무시간이었고, 손님이 없을 때 업무 숙지를 해놓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태도에 마음이 좀 아팠다. 이건 무례함이 아니다. 불친절이다. 불친절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포스 안에 메뉴 위치가 많이 헷갈리니까, 손님 없을 땐 그거 외우고 있으면 좋아요~"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그저 덜 다정한 사람일 뿐이다.


카페 매니저가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나가니까, 일을 알려주는 선임들도 '쟤도 금방 나가겠지'라는 생각에 정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난 그들이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경험을 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전혀 모르기에 그런 불친절이나 다정하지 않음에 무어라 불만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난 그래도 친절한 사람이 좋다.

살면서 내가 만난 친절한 사람은, 불친절한 사람보다 적지만, 그들에게 받은 따뜻함은 너무나도 많다.


처음 본 동료에게 웃으며 반겨주는 사람, 무언가를 알려줄 때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며 말하는 사람, 내 얼굴에 묻은 속눈썹을 떼어주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람, 옷에 튀어나온 실밥을 가만두지 못하는 사람, 지하철 임산부 석에 앉은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있는 임산부를 앉게 해주는 사람, 누군가의 글을 일고 잘 읽었다며 평을 남겨주는 사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게 '이런 생각도 있군요. 처음 알았는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난 정말이지 불친절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한다며 타인에게 제공하는 불친절은, 결코 내 마음에 편하지는 않다.


친절한 사람이 돼야지. 친절한 사람을 더 좋아해야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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