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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l 30. 2019

SBS 드라마PD 시험을 봤다

이루기 어려운 꿈을 가진 자들은 저주받은 걸까?

"왜 이런 꿈을 가지고 태어났나 몇 번이고 저를 저주한 적도 있어요. 남들처럼 평범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드라마PD를 꿈꾸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의 말을 듣고, 나 또한 목이 매였다. 나와 내 친구들의, 아니면 수많은 청년들의 이야기일 테니까.


브런치 덕분에 극복한 무기력


첫 회사를 퇴사하고 5개월 동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어느 걸 좋아하는지 탐색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꽤 긴 시간 동안 쉬고 있다. 그러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글 쓰기를 꾸준히 좋아했으니, 그동안 써놓은 걸 올려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고, 나도 그들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써놓은 글 말고, 새로운 글을 더 써보고 싶어 졌다. 어디에도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은 어려웠다. 무기력하게 침대에만 누워있던 나를 일으키고, 카페로 가게 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게 하는 그 작업이 내게 쉽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앓아온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불쌍하다' 글이 조회 수가 1만을 넘겨버린 거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난 '아빠가 우울증에 걸렸다' 글을 또 적었다. 그러자 그 글도 조회 수가 1만을 넘겨버렸다. 그러자 조금씩 나를 구독해주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평소에 댓글로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 하트를 눌러주는 사람,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계속 무기력했던 내게 일어날 힘을 준 존재들이니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주는 안정감


이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 즈음, SBS 신입사원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합격에 어안이 벙벙했다. 브런치에 써야 할 글들을 미루고 일단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필기시험 때까지 스터디를 진행했다. 상식 및 교양 문제를 공유하고, 각자 작문 주제를 가져와 쓰고, 각자의 것을 피드백해주었다. 


난 평소에, 내가 이야기를 짓고 글 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말하기 쑥쓰러워했었다. 정말 좋아할 뿐, 잘하지도 못하는 걸 밝히기가 창피했나 보다. 하지만 스터디에서 내 또래의 친구들과 같은 꿈을 이야기해보는 경험은 새로웠다. 드라마PD라는 목표를 가질 때까지, 그들의 과정은 전부 달랐다. 작가를 하다가 온 사람,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 아나운서를 준비하다가 온 사람, 졸업을 미루고 온 사람... 모두가 그 과정은 달랐지만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난 일종의 안정감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경쟁자지만, 그들은 나의 동료기도 했다. 수천 명이 지원하지만, 결국 1년에 2-3명만 뽑히는 이 바늘구멍 레이스를 함께 뛰는 사람들. 당장 돈을 벌기보다, 이루고 싶은 꿈에 한번 도전해보는 사람들. 차가운 현실 앞에 무너지고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고, 나도 그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슬픔은 나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그들은 울음을, 웃음을 터뜨렸다


대망의 시험 날, 난 우리 스터디 멤버들을 만나고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난 그때 내 동료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였다. 스터디 내내 무표정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멤버는 자신의 오답을 자랑하며 망했다고 웃었다. 나이가 가장 많아 다양한 정보를 주던 멤버도, 자신의 실수를 말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험장에서 처음 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통화로 가족에게 시험 잘 봤다며 말하는 사람, 친구를 만나 망했다며 웃음을 짓는 사람,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가만히 서서 계속 지켜보던 사람... 웃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있었겠지.


그리고 그날 커뮤니티엔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다. 오랜 준비로 지쳤다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사람. 재밌다고 계속해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SBS 사옥까지 걸어가 인증샷을 찍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런 거에 지치지 말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간절한 마음은 똑같겠지. 


나는 어떤 이유로 이 길을 걸어가는 걸까?


이번 시험의 작문 주제는 이거였다. 


당신은 오늘 ‘어떤’ 이유로 ‘어떤’ 도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휴게소에 잠시 들렀는데 ‘어떤’ 이유로 1시간 뒤, 그 휴게소를 떠나 출발지로 돌아왔다. 당신의 오늘에 대해 자유롭게 작문하시오. 서두에 제목 붙일 것. ]


어떤 걸 적을까 하다가, 난 내가 평소에 적어두었던 이야기를 발전시켜 적었다. 시험을 끝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작문 주제가 너무 어려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것보다 그 주제에서 비롯된 내 마음이 더 힘들었다. 


나는 '어떤 이유'로 드라마 PD를 지망하고 있을까? 드라마PD가 아니라 다른 일은 도저히 못하는 사람일까? 난 이야기 짓기를 좋아하지만, 이걸로 돈 벌어먹고 살 수 없으면 그저 취미로 남겨야 할까? 시험을 끝내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내내 생각했다. 


난 정말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될까? 꿈 대신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도 될까? 살면서 꿈 한번 이뤄보지 못하고 살아도 되는 걸까? 답이 없는 질문임을 알고 있지만, 혹시나 나중에 나이가 훨씬 든 다음에 돌아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저주를 받았건 아니건, 어쨌든 난 나의 삶을 살아간다


시험은 끝났고, 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시험에서 떨어진대도 난 그대로일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서 코트를 꺼내 입겠지. 그러다 눈을 맞고 또 다양한 생각을 하고, 그걸 글로 풀어낼 것이다. 이루기 힘든 꿈을 꾸는 것이 저주받은 일이든 아니든, 난 그냥 나로서 잘 살아야 한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난 여전히 나로서 잘 존재해내고, 잘 살아내면 된다는 생각. 어쨌든 SBS 드라마PD 시험은 재밌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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