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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Nov 17. 2019

잡코리아를 지웠고, 난 조금 더 행복해졌다

난 취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잡코리아, 내가 취업준비를 하면서 내내 사용했던 어플이다. 이 어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채용소식 알림을 보냈고, 난 그걸 하나하나 확인했다. 연봉이 얼만지, 어떤 회사인지, 평판은 어떤지...


난 취직을 하고 나서도 그 어플을 지우지 않았었다. 혹시나 더 좋은 조건의 회사를 찾게 되면 언제든 그곳으로 '점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한계를 몰랐다. 난 끝없이 더 높은 연봉을 원했고, 더 나은 복지를 원했고, 더 좋은 환경을 원하고 있었다. 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욕구가 이 어플과 나를 사슬처럼 엮고 있었다. 


조직생활엔 알레르기가 있습니다만


두 번째 회사에서, 탐탁지 않던 직장 동료가 있었다. 틱틱대며 은근히 사람 신경을 긁는 듯한 말투. 상사들에게 아부 떠는 행동. 은근히 사람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올려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 개인적으로 알게 됐다면 상대도 안 했을 사람이지만, '회사'라는 조직에 묶여 나는 그를 '선배'라고 불러야만 했다.


난 그와 적당한 거리를 뒀다. 가끔 그는 내게 기분이 나쁠 듯 말듯한 말들을 하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꾹 참고 넘겼다. 남의 신경을 긁는 그의 태도가 자꾸 내 마음속에서 돌아다니며 날 괴롭혔지만, 애써 무시하며 지냈다.


하지만, 나의 업무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그의 행동은 참기 힘들었다. 시시콜콜 반박하자니 버릇없는 후배로 찍히기 뻔했다. 난 기분 나쁠 때마다 그러한 수직성에 굴복했다. 아니, 내게 수직성을 은근히 드러내는 회사 사람들에게 그런 척한 거였다. 


결국 오해가 쌓여 그와 나는 부장과 대리가 보는 앞에서 대판 싸우게 됐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로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더 악독한 말이라도 지껄여줄 걸 싶지만, 쨌든 난 그 사건 이후로 퇴사를 했다.


나를 위한 좋은 자리가 있을 거라는 미련


퇴사를 반복하고도 난 이 어플을 끊어내지 못했다. 어딘가엔 나에게 딱 맞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회사가 있을 거 같았다. '내가 이토록 고생해온 이유는 이 회사를 만나기 위했던 거였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안성맞춤인 취업. 난 그런 유니콘 같은 회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외로워질 뿐이었다. 난 '조직'이란 걸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어느 직장에서는 필요하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확증받고 싶었나 보다. 난 잡코리아 알람에 뜨는 회사 리스트를 보면서 더 작아졌다.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이쁨 받으려고 노력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그러다 난 홧김에 잡코리아를 지웠다. 


사슬은 나만이 끊어낼 수 있지


정말 홧김이었다. 취업을 아예 포기한다 거나, 돈을 벌지 않겠다 거나, 고향인 시골로 돌아간다 거나 하는 거창한 목표 따위도 없었다. 난 그냥 화가 나서 지운 거다. 


취업 어플이 없어진 후로 난 핸드폰을 확인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새로운 채용공고가 뜰 때마다, 어플에 들어가 이 회사에 안성맞춤으로 날 변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줄었다. 자연스레 나의 삶은 더 나아졌다. 그제야 나는 내가 미뤄온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쓰고, 친구들을 만나고. 그제야 나는 어떤 조직과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의 사슬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개인사업자를 세웠고, 어떻게든 돈을 벌 궁리를 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의 쓸모를 조직에 잘 융화되는가로 점치던 때보단 훨씬 나은 삶이다. 취업만이 답이 아니라는 열쇠를 찾을 때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난 이제야 내가 어떤 일들을 해내고 싶은지 고민하는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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