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회사를 그만뒀다. 만나던 연인과도 이별을 고했다.
난 다달이 찍히는 230만 원의 월급과, 매 시간 연락하며 많은 걸 나누던 애인을 포기했다.
회사를 포기하려고 했을 땐, 난 내적 갈등이 이미 최고조였다.
내가 맡은 업무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나 의미가 전혀 없었다. 성취감도 나의 쓸모도 느껴지지 않았다.
직장 동료와 마찰이 있을 땐, 조직의 수직성에 굴복해야 함이 못마땅했다. 억울해도 모든 일을 나의 잘못으로 떠안아야 하는 시스템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같은 이유로 퇴사를 고민했을 때, 몇몇 사람들은 내게 꽤 아픈 말을 했다.
사회란 원래 그런 거라고, 모두가 다 참으며 사는 거라고,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사실 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순리 따위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퇴사를 할 때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사실을 고민하고 나를 탓했었다. 혹시 내가 나약한 건 아닌지, 내가 제 멋대로고 철이 없어, 고생을 덜 해봐서 그런 건 아닌지...
결국 난 무작정 퇴사를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알리기 무서웠다.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난 퇴사 소식을 유일하게 당시의 연인에게 알렸지만, 그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슬픔에 취해 날 돌볼 여유 따윈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도 결국은 위의 몇몇 사람들처럼 나의 이른 퇴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나는 아래로, 더 아래로 침전하기만 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난 친구들에게 자연스레 퇴사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들에게 넋두리하는 거 같아 슬펐지만, 버터지 못했다고 내게 혀를 차던 사람들 얘기와 연인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다행히도 좋은 친구들을 둔 난, 그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나와 마찰하던 동료를 시원하게 욕해줬고, 나의 결정을 존중해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친한 후배 이슬이가 했던 말이다.
"고생 많았어요. 근데 그 사람들 진짜 웃기다. 오빠가 퇴사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 사람들이 쉽게 내뱉었던 그 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 함부로 말하는 거 진짜 비겁해요. 왜 사람들은 포기한 사람들에게 나약하다고 그럴까요? 포기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 말을 들은 뒤로, 난 가족들에게도 퇴사 소식을 전했다. 가족들이야 하는 소리는 뻔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말들이 아프게 다가오진 않았다.
내가 내린 결정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임을 이슬이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즈음 용기 있게 애인과도 헤어졌다. 맞추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서로가 버티기 힘들어했는데,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둘 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결정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건, 이슬이의 말이었다. 난 누군가의 말에 죽기도, 살기도 하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누군가가 자신이 포기한 경험을 내게 꺼낸다면, 난 그의 슬픔을 볼 것이다.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겪어온 수많은 일들과 감당해야 했던 감정들. 난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말을 들어야겠다.
말,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는 얼마나 신기한 건가 싶다.
난 가끔 나를 위로하는 이슬이의 모습을 보며 떠올린다.
이슬이는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슬픔을 혼자 감당하며 자라야 했을까?
언젠가 이슬이가 포기한 것들에 대해 꺼내놓는다면 말해야겠다.
괜찮아, 수고 많았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네가 널 위해서 용기 낸 거 알아. 네 탓하지 말고 널 칭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