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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an 28. 2020

서울에서 자취방 구하다가 토했어요

집은 정말 많은데 내가 살 수 있는 곳은 없네요

그날은 서울에서 자취방을 구하려고 마음 먹은 날이었어요. 부동산 어플을 깔았고, 내 예산에 맞는 방을 한참 구경했죠. 그 어플에 실린 사진은 정말 다양했어요. '어떻게 이런 데서 살지?'하는 곳과, '와, 나도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끔하는 집 사진들이 많았죠. 저는 많은 부동산에 연락을 했고 하루를 통으로 비워 8월의 여름날 방을 보러 다녔어요. 신림에서 강북, 강서까지 돌아다녔죠. 하지만 어플에서 보이던 방은 없었어요.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이거나, 벽지 조차 발려있지 않은 곳이거나, 너무 비싼 곳들 뿐이었죠.


그날은 몇십년만의 더위라고 뉴스에서 엄청 떠드는 날이었어요.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이 저녁이 됐고 저는 마지막으로 본 강서구의 반지하를 뒤로 한 채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었어요. 그러다 그만 울컥 화단에다 토를 하고 말았답니다. 이거 참 웃기죠. 내가 가진 보증금으로는 지상에서는 살 수가 없대요. 다달이 내야하는 월세는 저의 한 달 생활비를 훨씬 웃돌았구요. 그게 갑자기 너무 슬프더라고요. 고개만 돌리면 아파트와 집들은 많은데, 왜 난 서울에서 잘 곳이 없을까. 쏟아질 거 같은 눈물을 참고 그냥 걸었어요. 누나집에 겨우 도착해서 씻고 선풍기 바람 앞에 누웠죠. 그리고 생각했어요.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부동산 정책이 어쩌고를 떠들어대는 세상에서 난 너무 순진하게 살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요. 청년주거난이 사회문제라는 세상에서 난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될까요. 동화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하잖아요. 여기서는 계속 뛰지 않으면 제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난 쉼없이 뛰지 않으면 평생 얹혀사는 집 선풍기 앞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까요.


뭐, 지금은 작은 투룸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때와는 다르게 다달이 돈도 벌고요, 나름 괜찮은 환경에서 지내는 거 같아요. 여기는 벽지도 발라져있고, 지상이거든요. 그런데 내 방 앞에는 높은 래미안 아파트가 있어요. 그리고 가끔 생각해요. 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내 방은 어떤 모습일까. 그럼 어떤 기분이 들까.


또 헛된 꿈이 생겼어요. 집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도 저런 집에 살아야겠다- 뭐 이런 것들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에서 내 집을 구하는 건, 토가 쏠리는 일인 거 같아요. 앨리스의 붉은여왕이 하는 말처럼, 쉼없이 뛰어야 토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저 래미안 아파트에 살 수 있는 걸까요. 흠. 오늘도 좁은 내 방에서 괜찮은 척 자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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