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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Feb 18. 2020

다가올 외로움을 조용히 기다리는 나같은 머저리들에게

익숙해지는 건 어려워도, 달래주는 건 쉽죠

가끔씩, 이정도면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쓸 돈이 있다. 평생을 다 바쳐 사랑을 약속한 사람은 없지만, 술 한잔 나눌 사람은 있다. 날 괴롭히는 일들이 꽤 있지만 이걸 적당히 해소할 창구가 있고 적절히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일 때. 난 그런 안정감이 꽤 지속 되는 날들이 이어지면 행복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느낄 때면 이내 불안이 함께 찾아오고는 했다. 곧 외로움이 다가오겠구나. 슬픔이 날 덮쳐버리겠구나. 난 또 불안감에 허우적 대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구조신호를 뿌리며 살겠구나. 이 행복은 얼마나 갈까? 이번엔 얼마나 높은 곳에서 날 떨어뜨리려고 이렇게 행복을 선사하는 걸까. 등신같이 난 안정된 나날에도 매번 슬픔을 차분히 기다렸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생각해봤다. 집에 도착하면 어둠에 젖어있는 방. 침대 위의 차가운 이불을 덮고 누워 핸드폰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이내 내 몸만한 쿠션을 안고 잠 들었다. 연락할 사람은 많았지만 나의 솔직함을 부분부분 잘라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사람에겐 내 외로움의 왼쪽을, 저 사람에겐 내 슬픔의 뒷쪽을, 그 사람에겐 내 비밀의 가운데를 각각 분할해야만 했다. 적절치 않은 사람에게 적절치 않은 부분의 단면을 보였다가는 그가 날 버려버릴 거 같았으니까. 난 그 두려움에 언제나 적절한 농도의 외로움을 유지해나가며 사는 거 같았다.


외로움의 농도를 진하게 맞춰놓고 사는 건 내게 방패같은 거였다. 나의 슬픔과 생각을 너무 많이 보여줘버리면 사람들은 날 떠나갔다. 그들은 나의 단면만을 사랑했고 그 이면은 보고 싶지 않아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나 또한 누군가의 깊은 이면은 부담스러워했으니까. 그래도 몇번 버림받은 경험은 내 태생적 외로움을 길들여놓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외로움을 들키지 않도록. 너무 많은 슬픔을 공유하지 않도록 날 키워놓았다. 그래서 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낄 때도 조용하게 곧 찾아올 외로움을 기다린다. 날 맞이할 슬픔을 준비한다.


조금씩 나이 들며 느낀 건, 이같은 나를 달래줄 존재가 필요하단 것이다. 그것은 한잔의 술이, 누군가와의 대화, 어떤 책, 어떤 영화나 음악이 되기도 했다. 조용히 글을 쓰며, 나만의 단편영화를 끄적이며,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를 달랜다. 아직도 어려서인지, 외로움과 슬픔을 견딜 수는 없기에 그저 날 달랜다. 언젠가는 덜 외로울 거라고. 언제가는 슬퍼도 전부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생길 거라고. 나도 누군가를 의지해줄 수 있는, 어느 것과도 바꾸지 못할 소중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오늘도 글 몇자로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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