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동성친구가 없는 이유
내가 좀 다르고 소수면 어때요
"강산아, 넌 남자 애들이랑 좀 친해질 필요가 있어"
스무 살, 유난히 여자 애들과 친한 나를 보고 친구가 말했던 적 있다. 남자 동기들이 너를 궁금해 한다, 너도 좀 더 가까워져보면 어떻겠냐, 정도의 말이었던 거 같다. 당시에 나는 여성친구들이 많았다. 유난히 여초였던 학과 성비 탓일 수도 있겠고, 공놀이보다 책 읽기나 글 쓰기, 영화 보기를 좋아해서 운동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은 탓일 수도 있겠다. 여튼, 동성친구는 친해질 사람과는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당시엔 나랑 코드가 잘 맞아 보이는 남자 친구들이 많이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공을 들여 사귀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난 20대의 후반에 가까워지면서도 남자 친구들이 여전히 적었다.
남고를 나왔으나, 몇몇은 지방에 있고 몇몇은 연락이 끊겼다. 연락하는 대학 친구들은 여성이 대부분이고 대외활동에서 만난 친구들도 여성들이 압도적이었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도 전부 전역과 동시에 인연이 끊겼다. 나도 조금씩 동성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때 즈음 이런 내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대학 예비군 훈련 때였다. 학과 남학우들과 친하지 못한 탓에 어색한 시선과 말투를 컨트롤 하지 못해 혼났다. 서로 얼굴과 이름만 아는 사이에, 과동기들도 나를 어색해 했다. 같이 밥을 먹어도 몇마디 나눌 수 없었고, 조를 짜서 훈련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강산아… 그 도시락 여자친구가 싸준 거야?”
“아… 아니. 그…그냥 친구가 싸줬어…! 넌??”
“아, 난 여자친구가. 음..너 여자친구 없구나..?”
“으응..부럽네~ 오늘 진짜 덥다 그치?”
“그러게. 훈련 빡세다…”
정말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갖은 노력을 쥐어짜내 대화하는 경험을 했다. 뭐 어찌저찌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난 그 날 후로 나의 인간관게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넓은 관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낯을 가렸고, 인간관계 스킬 따위는 몰랐다. 스무 살 때 친해진 친구들과 20대 후반이 돼도 여전히 친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과만 친하다. 대학 때 나는 그 친구들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나보다. 인간관계가 너무 좁았지만 단단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다른 인간이 낄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동성이나 이성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형성된 관계 내 성비는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난 그 후로 동성 친구들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나도 남자지만, 보통 남성들은 뭘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가까워지는지 관찰했다. 게임이나 연애 얘기, 술자리나 시덥잖은 농담이 주를 이뤘다. 난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았기에 익숙해지려고 남학우들 모임에도 들어가 술자리도 가지고 농담도 나눴다. 어떻게든 무리에 끼려고 했던 미운오리새끼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난 어설프게 유행하는 옷을 따라입은 어린이 같았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불편했다. 나도 그들도 진심으로 즐겁지 않았다. 난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불편한 시간을 몇 차례 나눈 이후로 나는 그들과 구태여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종의 죄책감이 생겼다. 난 왜 내 또래의 동성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난 왜 그들과 다르게 태어난 걸까? 그 생각의 끝은 항상 내 부족한 보편적 남성성을 탓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다 난 보편적 남성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보편적인 것은 다수가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뒷면엔 항상 소수가 있고 그 소수는 적은 표본이기에 더 끈끈히 결합될 수 있다. 그 소수에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난 적은 표본에서 더 끈끈히 결합이 된 상태다. 내가 그 소수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난 소수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거 같다. 난 소수가 아니고 일반적이라는 걸 내 자신에게 관철시키고픈 마음.
난 내가 조금 다른 소수라는 걸 인정하고 나서 좀 나아졌다. 공놀이보단 글을, 여자 연애 얘기보단 영화를 더 좋아하는 그런 남자란 걸로. 난 그렇게 날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어쩌면 지금도 날 연습한다. 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혹여나 나와 같은 이가 있다면 나와 같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