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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Mar 24. 2020

열등감, 그 거지같은 감정에 대하여-2

돌고래처럼 살고 싶은 어류의 이야기

돌고래는 뇌를 반으로 나눠서 쓴단다. 그래서 잠을 잘 때도 수면 위로 올라서 숨을 쉴 수가 있다고. 하지만 상어처럼 사는 거 같다던 그 친구. 헤엄치지 않으면 그만 가라앉고 말아 버린다는 상어 같은 어류가 되기 싫다던 그 친구. 그는 한 동안 일을 하지 않고 파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런 그를 보면서 씻을 수 없는 패배감에 젖었다. 나도 저 친구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왔는데 난 왜 아직 상어일까? 그렇다면 나도 돌고래였던 적이 있을까?


내게 열등감을 심어줬던 그 친구의 글마따나, 나도 스무 살 때부터 열심히 살아왔다. 인 서울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들키지 않으려면 인 서울 대학생들보다 더 멋진 스펙을 가지고 있어야 했으니까. 난 대외활동부터 교내 학보사까지, 온갖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내 스펙이 되어줄 만한 ㅡ내 취업에 날개를 달아줄ㅡ 것들은 모조리 다 해냈다. 물론 밀레니얼 세대답게 이걸 sns에 인증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좋아요가 많이 쌓일수록 더욱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스펙을 사냥해나갈수록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볼 시간은 줄고 있었다. 그저 남들의 부러움을 많이 살 수 있을 게 무엇인지만 내게 중요했으니까. 난 그런 내가 똑똑한 돌고래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착각이란 건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친구 때문에. 내가 정말 돌고래였다면 난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난 돌고래인 척하는 상어인 내 모습을 그 친구의 글을 통해 들켜버린 것이다. 나의 은밀한 비밀을 들춰내버린 그에게 난 무안함과 민망함이 열등감으로 발현된 거다.


잠을 잘 때도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만 하는 어류. 내가 그런 어류인간임을 난 그 친구를 통해 느껴버린 거다. 그 친구와 연락이 뜸해진 후에도 그 열등감을 떨쳐낼 수 없었는데, 이제야 알게 됐다.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됐기 때문일까? 지금에서야 그 친구에게 느끼는 열등감도 무엇도 없지만 당시엔 날 들켜버린 민망함을 열등감으로 치환해 날 스스로 괴롭히고는 했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지금에서야 난 그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꼭 그래야만 할까? 난 왜 꼭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힘든 감정으로 몰아넣고 힘들어할까? 나의 우울과 불안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건 결단코 열등감임이 확실한데, 난 왜 이를 그 당시에는 잘 관리하지 못하는 걸까?


그래도 그 친구와 돌고래 글이 알려준 교훈은 달다. 앞으로 언젠가 또 열등감이 찾아온다면, 일단 날 먼저 안팎으로 잘 다스려놓은 다음에 내 감정을 처리해나가야겠다. 어쩌면 내게 열등감이란, 평생을 싸워야 할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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