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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May 05. 2020

여성스럽다는 말을 듣고 자라온 남자들에게

나는 그저 나답게 살고 싶은 거니까

학창 시절 난 정말 확실하게 삐뚤어진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의 말에 토를 달기 좋아했고 남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가치를 의심하고 비판하기 좋아했다. 친구들이 체육 시간마다 공을 차면 난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무턱대고 내게 반말하는 사람들이 싫어, 동아리 후배여도 안 친하면 높임말을 썼다. 이런 나를 보고 다들 여자 같다고 했다. 난 그저 공놀이보다 책이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했을 뿐인데, 그게 왜 여자 같은 것으로 분류되는지 억울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매일이 심판의 날이었다. 축구나 야구 동아리에 남자 동기들이 모이는데 나는 왜 가입하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선배들도 그런 동아리에서 관계를 좀 쌓으라고 말했다. 그냥 별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강산이는 가만 보면 여자 같은 구석이 있어.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그래서 언제가부터는 그냥 그 심판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난 여자 같은 남자구나. 그런가보다.


고등학생 때, 문학에 정답이 있다고 가르치는 문학 교사는 시험에 나오지 않는 질문을 하는 나를 특히 싫어했다. 만족할 만한 답변을 받지 못한 날엔, 교과서에 적힌 문학 해석법에 빨간 펜으로 줄을 죽죽 그으며 내 감상을 덮어 적고는 했다. 그러면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교과서에 적힌 김소월의 특징은 민요적 율격, 한의 정서, 여성적 등이었다. 난 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그가 작품 속에 녹여냈다는 한국인의 한의 정서는 열여덟이라 공감이 안 됐고, 민요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 많은 특징 중 제일 거슬렸던 건 여성적이라는 말이었다.


 선생님, 왜 김소월의 작품이 여성적인가요.


부드럽고 순한 어조많이 에둘러서, 화자가 수동적이라, 서정적이고 경어체가 많아서란다. 뭐야, 이거 완전 나잖아. 그때 깨달았다. 난 왜 그렇게 여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지. 김소월도 나도 여자 같다는 걸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다들 그렇다니 대충 그런가 보다하고 판단을 유보했다.


그러다 대학 졸업의 문턱에 선 4학년 마지막 학기 때, 국문과 전공 수업을 신청해 듣게 됐다. 현대 시 문학 강의였는데, 김소월의 작품 중 『여자의 냄새』라는 시에 대해 토론을 했다. 나는 이 시에서 화자 '여성적' 이라던 모습과 달리, 어딘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자가 말하는 것이 실제 여성에 관한 욕망인지 혹은 다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인지에 관한 의견은 분분했다. 하지만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그는, 교과서의 문법을 따르자면 참 '남성적'이었다. 난 위와 같은 나의 경험을 말 하며, 문학 수업에서 화자의 특정 태도를 여성적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구시대적이고 부당하다고 말했다. 모든 여성이 수동적이거나 경어체를 쓰는 것 아니며, 부드럽거나 순한 것은 여성만의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여성이 아닌 것이 아니며, 그러한 영역을 설정하는 순간,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 자격을 함부로 박탈시키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반응은 차가웠다. 국문과도 아닌 타 과 학생이 문학에 대해 떠드는 게 조금 아니꼬왔던 것인지, 국문학과 학생들은 나에게 총 공격을 했다. 모순적이라거나 이상적이라거나 하는 평이 가장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그렇다면 여성적이라는 분류를 하지 않으면 화자의 태도를 어떻게 범주화 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냐는 거였다. 그렇게 집중 포화를 당하자,  좀 세게 나갔다.


그래서 저는 국문학자들이 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인식과 시대는 계속 흐르잖아요교과서보다 아주 빨리요그럼 그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닐까요저는 그 움직임을 학도들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건방진 태도였지만, 이런 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교수님의 표정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해당 수업을 끝내고 나서 난 이 시를 총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김소월을 여성적이라 표현하, 본인을 비평가라 칭하는 뭇 오입쟁이들이나 교과서에게 탕, 탕 쏘아야겠다고. 그래, 역시 그 교과서랑 문학 교사가 틀렸어. 작가의 표현을 쉽게 여성적으로 퉁치고 유형화시키는 문학정답자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시를 찾았다고! 누가 또 다양한 수사를 사용해 소월을 정의 내리거나 문학에 정답이 있다는 듯 말하면, 이거 봐. 소월은 여성적인 게 아니라 그냥 소월스러운 거라고. 총 쏘듯 멋들어지게 말해야지, 이렇게 생각했다.


당시에 참석하고 있던 독서모임에서 이 경험을 말했다.


 정말 어이없다니까요. 소월이 무슨 여성적이야. 그게 왜 정답인 듯 말하는 건지, 참. 소월이 살아서 그런 평가를 받았다면 이런 시를 수십 편은 더 쓰지 않았을까요?


결국 김소월은 여성스러운 게 아니라 소월스러운 것이라는 말을 하며 총구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후-하고 불고 있었다. 그때 건너편 사람이 말했다.


 정말 강산님다운 말이네요. 전부터 느꼈는데 정말 강산 씨는 개성이 확실해서 어디든 그게 묻어나는 거 같아요.


응? 작정하고 열변을 토하면 재수 없어 보일까 봐 너스레 떨면서 말한 건데 이렇게까지 칭찬해준다고? 머쓱한 마음에 감사하다 말하고 마무리했지만, 그 말이 하루 동안 맘속에 돌아다니며 날 괴롭혔다. 


그날 밤도 심판의 날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짧은 한 마디가 여자 같다라는 콤플렉스에서 날 꺼내 주었다. 김소월의 작품이 여성스러운 게 아닌, 그저 소월스러운 것처럼 나도 그냥 나다운 거구나. 이 당연한 걸 인정받지 못해서 괴로워했나 싶었다. 어쩌면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어느 누군가 나처럼 나다움을 인정받지 못해 힘들어한다면, 이 시를 심판대 삼아 그에게 재심의 기회가 있다고 말해줘야지- 다짐했다. 우린 그냥 우리잖아요. 나 아닌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지만 난 알고 있다남에게 하는 말은 오히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을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그냥 나스럽게 살자고.


그래이제야 너는 참 너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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