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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May 10. 2020

나도 내가 헬스를 하게 될지는 몰랐다

운동과 우울증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우울하다고? 운동 해~ 그럼 좋아질 거야~" 

"우울증 그거 너무 집에만 있어서 그런 거야. 사람 만나고 그러면 다 괜찮아진다더라."


우울감이 심해져서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자,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의 우울과 불안이 운동이라는 행위로 간단히 삭제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슬픈 마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았다. 저들이 쉽게 내뱉는 말처럼 나의 우울과 불안도 값싼 감정이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계절은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봄이었고, 난 떨어진 벚꽃잎이 가득한 상담치료센터 앞길을 걸으며 다짐했다. 


'앞으로는 누구한테도 나의 우울을 말하지 않아야지.'


우울증이 중증도로 심해지자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면, 내 속까지 훤히 다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전부 까발려지는 것만 같아 너무 불안했다. 사실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거짓말들로 내 삶의 꾸며온 것을, 외롭고 찌질한 나를 혐오하는 모습을 들킬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자기혐오는 커져만 갔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게 됐다. 나의 정신과 주치의는 첫 대면에서 얼마나 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산책 말고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의 우울이 운동 하나면 해결될 거라는 듯 말했던 사람들처럼, 주치의도 운동이나 하라는 말을 하면 난 어떡해야 하지- 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주치의는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평소보다는 조금 더 걸어보고, 조금만 더 햇빛을 받으세요. 힘들면 하지 마시고요."


조금 무심하게까지 들리는 그 한 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처음 보는 주치의에겐 긴장하지 않고, 날 들켜버릴까 봐 불안해할 걱정은 말자고 마음을 놓았다. 난 그날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처방을 받았고 하루에 두 알을 털어 넣으며 산책하는 시간을 늘렸다. 그러면서 내가 운동을 제대로 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돌아봤다. 군대에서는 체력으로 따지면 중하위권이었다. 남들이 한 번쯤 다닌다는 헬스장 조차 다녀본 적이 없었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 무슨 운동- 이렇게 생각하며 운동을 포기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난 정신과 치료를 마쳤고, 회사를 다니게 됐다. 취업하고 나서는 회사의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 불면이 심해서, 술로 강제로 잠들게라도 해서 자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난 일주일에 다섯 번은 넘게 술을 마셨고 그중 절반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기억을 잃었다. 불면을 위해서라기보단, 술에 의존하는 날들이 많아진 것에 불과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덜 슬프고 덜 우울하고 덜 불안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엉망인 생활습관으로 지내니, 살이 찌기 시작했다. 뱃살이 가장 문제였다. 마음의 우울 때문에, 망가진 내 몸을 보자니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진 돈을 전부 털어 개인 헬스 PT를 등록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내 몸을 되찾고 싶었다. 모델들처럼 근육질의 몸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봤을 때 덜 비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난 그렇게 PT를 시작했고, 트레이너는 역시나 술 마시고 잠드는 습관 때문에 배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체지방을 줄인 다음에 근육량을 늘리는 전략으로 헬스 커리큘럼을 짰다. 그렇게 PT를 난생처음 하게 되었다.


PT 첫 수업 날, 트레이너는 내게 근력은 좋으나 근지구력이 약하다고 말했다. 난 복근부터 어깨, 팔, 등, 가슴까지 차근차근 워밍업을 했다. 무건운 쇳덩이를 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땀이 흐르고 난생처음 보는 표정이 내 얼굴에 그려졌다. 그래도 그 무거운 것들을 들어낼 때는 내 몸의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자 온몸이 쑤셨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내 몸의 근육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거 같았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술 마시고 잠드는 것 말고, 내가 새로운  것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날 설레게 했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몸의 변화는 없었지만 근육이 아프다느 게 오히려 날 더 즐겁게 했다. 술에 취해 잠에 들기를 반복하던 전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2번의 수업과 한 번의 개인 운동을 하니 조금씩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술을 조금씩 줄였고, 먹는 것도 신경 써서 먹기 시작했다. 이왕 하는 운동,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자리 잡았었으니까.


지금은 PT를 한 지 3개월이 되어간다. 주위에서는 살이 많이 빠졌다고들 한다. 내가 내 몸을 만져봐도 전보다 훨씬 단단해지고 건강해졌음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들도 조금씩 그 강도가 낮아졌다. 우울할 땐 운동을 했고 불안할 땐 단백질을 섭취했다. 주변에다가도 운동을 하면서 몸뿐 아니라 마음도 좀 더 나아졌다고 말한다. 우울하고 지칠 땐 그냥 별생각 없이 운동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가끔 생각한다. 나에게 우울하면 운동하라던 그때의 사람들은 이런 느낌을 알아서 내게 운동하라고 그렇게 쉽게 말했던 걸까?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의 나이다. 난 누구의 강요가 아닌 나의 선택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 습관을 잘 들여 취미로 발전시킬 생각이다. 물론 여전히 운동이 나의 우울증을 치료해준다고 믿지는 않는다. 난 여전히 우울감을 느끼고 가끔 불안한 감정이 도질 때면 미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내 감정의 주도권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날 괴롭히는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은 확실하다. 


난 내일도 헬스를 할 거다. 근육량이 얼만지 체지방이 얼마나 빠졌는지는 이제 내게 중요하지 않다. 운동을 하며 내가 전보다는 더 나아졌다는 느낌을 잊지 않을 생각이다. 내일도 무거운 쇳덩이를 들며 나를 좀 더 다독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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