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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an 07. 2020

남에게 하는 말은 오히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젊은 작가에게 보낸 편지.

글을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 많아졌다. 책을 내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나보다 어린 작가의 책을 읽었다. 나와 또래가 책을 냈다는 게 처음엔 신기했다. 책을 쓰는 사람은 뭔가 대단하고 뛰어난 사람들 같았으니까.


사실 나이가 어린 작가의 책은 곧잘 평가절하 당한다. 연륜과 스킬이 엄청난 책들에 익숙한 독자들이, 경험과 노련함이 부족한 어린 작가의 책에 만족하기 힘들 거라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어린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린 작가만이 할 수 있다. 내가 읽은 어린 작가의 책이 그랬다. 오롯이 그 나이 때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들. 쉽게 읽히는 그 글들이 반가웠다.


난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적어 작가의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보냈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가에게 하는 말이,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하고픈 말이 아닐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소중한 것이 내게 다가왔을 때 그 감사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보다 더 어렸다면 그 값짐을 모르고 무심히 지나쳤겠지요.

소중한 것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옵니다. 사랑이기도, 친구이기도, 직업이기도, 돈이기도 하죠. 그런데 분명한 것은, 소중한 것은 가장 큰 파괴와 함께 온다는 겁니다. 내게 준 행복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큰 상처를 내게 안겨줍니다. 괴롭지만, 많은 눈물을 흘리지만, 내 상처로 인해 나의 사람들을 또 상처 입히지만. 그래도 우린 그때만큼은 행복했기에 등가교환을 했다고 스스로를 위하는 일뿐이 없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어떠셨나요. 솔직한 마음을 다시 직면해야 해서 괴로웠나요. 아니면 후련했나요. 저는 항상 반반이었던 거 같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 때는 글조차도 의미가 없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거 써봤자 뭐 하나- 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지요. 그러면서도 좋은 글을 보면, 나도 꼭 저렇게 써보고 싶다는 욕망도 강해지기도 하고요.

삶이랑 치열한 육박전을 벌일 때, 우린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모순적인 양 극단의 감정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다가도, 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싶어 나를 다그칩니다. 나의 외로움과 나약함을 들킬까 경계하면서도, 이를 알아주는 사람을 붙잡고 엉엉 울고 싶기도 합니다. 너무 좋아하는 존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오히려 미워지는 때가 있는 것처럼요.

작가님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은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면서, 조금씩 들키는 방식으로 그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요. 상처를 받은 마음도 글로 쓰고, 세상과 사람을 밝게 바라보고픈 마음도 글로 쓰셨죠. 양 극단의 감정을 글로 녹여내려고, 본인의 마음을 부단히도 부수고 다시 조립하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을 하셨을지 감히 예상해봅니다.

세상에 선한 것이 없다고 확신할 때, 갑자기 나타난 선함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힘들 때, 나와 타인을 위해 글을 쓰고는 합니다. 때론 그 글과 마음이 너무 어두워서 다시 쳐다보기 힘들 때도 있지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땐 몰랐었다. 고통 때문에 얼떨결에 놓아버린 정신의 파편이 내 사람에게는 비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린 살아가며 지켜야 할 존재들이 많습니다. 어렸을 땐 나의 힘듦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적었다면, 앞으로는 나와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려합니다. 작가님은 어떠시려나요. 작가님 책을 보며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 읽는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작가님에겐 잔인할 수 있겠지만, 독자로서 작가님의 아픔과 슬픔, 기쁨을 글로 많이 접하고 싶습니다. 더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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