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련 Jul 20. 2020

엄마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그리고 난 가족의 힘을 믿는다

엄마가 보이스피싱으로 700만 원을 털렸다. 


우리 가족은 모두 모여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의 안정감이었다. 엄마가 자신을 자책하지 않도록, 엄마는 잘못이 없다는 걸 알리고 여전히 사랑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피해자가 왜 자신을 탓해야 하죠


가해자들의 보이스피싱 방법은 아주 교묘했다. 셋째 누나의 포털 사이트 주소록을 해킹해 엄마에게 메신저로 접근했고, 누나인 척 채팅 하면서 카드정보를 알아낸 것이다. 그들은 엄마에게 어플을 설치하게 했고, 엄마의 스마트폰을 복사해 원격으로 조종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출까지 받아 해외로 송금을 하고 잠적했다.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다. 700만 원을 털렸다는 사실보다, 딸이 잠깐 결제할 게 있다는 도움 요청에 허겁지겁 카드 정보를 알려준 당신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꼈다. 한 번 더 전화해서 확인해볼 것을- 의심해보고 알아볼 것을- 하며 철저하게 행동하지 못했던 당신의 행동에 후회하고 본인 탓을 했다.


엄마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고, 서울에서 지내는 네 명의 자식들은 당장 부모님이 지내는 전라도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매형들은 다음 날 출근이었지만 전부 연차를 냈다. 그 저녁에 자식들은 차를 타고 내려가 새벽에 본가에 도착했다. 잠을 잔 후 다음 날부터 바삐 움직였다. 모두가 각자 역할을 나눴다. 큰 매형은 통신사에, 누나들은 경찰서에, 작은 매형은 금감원에, 나는 기타 카드사와 결제대행사에 연락을 했다. 우린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황을 수집해 서로 공유했다. 주말이 끼는 바람에 수사기관 측에서는 사건 담당자가 배정되지 못했다. 나는 진술서 초안을 작성해 지금껏 수집한 정황과 팩트에 기반해 추측 가능한 사항들을 정리했다. 


난 믿음의 힘을 믿는다 


이렇게 각자 맡은 일들을 하다 보니 저녁이 금방 왔다. 엄마와 아빠, 누나들과 매형, 나까지 모든 가족들이 모여 술 한잔을 했다. 앞으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누가 담당해서 처리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도 중요했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엄마가 자책감에 아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누나들도 생각이 비슷했다. 우린 실없는 농담을 엄마에게 하며 엄마가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엄마, 동네에서 가장 촉새인 이모가 알아버렸으니까, 엄마 사기당한 거 이제 동네 이모들 다 알고 있겠네?"

"응 그렇겠지 뭐."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 이제 엄마한테 보험 들라고 부탁했던 동네 이모들한테 먼저 말해버려. '소식 들었지~? 나 이번에 개털 돼버렸어. 어휴~' 이렇게 하면 이제 다른 이모들도 엄마한테 뭐 사달라고 못하지 않을까?ㅎㅎ" 


내내 울상이던 엄마는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도 너희들이 내려와서 일처리를 다해주니 든든하고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일이 터지자마자 팔 걷어붙이고 똘똘 뭉친 형제들의 모습에 아빠는 감동받은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둑맞아버린 700만 원이야 이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700만 원을 내고 더 끈끈히 뭉치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잘못한 것은 피싱으로 사기를 친 그들이다. 어느 누구 하나 누군가의 부주의라며 탓하지 않았다. 우린 그저 가만히 뭉쳤다.


살다 보면 정말 별 일이 다 생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각오했던 것보다 더 강하고 어려운 일들이 몰아닥친다. 그럴 때마다 우린 뭉쳐야 한다. 연대해야 한다. 서로를 탓해서는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을 믿는다. 앞으로도 더한 기상천외한 미친 일들이 많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든 중요한 건 믿음이다. 결코 나의 가족들에게 난 절대로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내가 나로서 소중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안정감. 이런 믿음을 갖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가족이기에 굳게 지켜나가야 할 믿음이다. 어떤 일이 있든 어떤 환경에서든 가족끼리는 서로가 절대로 버려지지 않고 혼자 남겨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 거칠고 외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쩌면 앞으로 가족과 부딪히고 싸우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지만 남이고 각자가 너무 다르니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 서로는 서로의 편이라는 사실을 앞으로도 난 믿을 것이며, 믿음의 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것이다. 이 거칠고 외로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내가 기대고 싶은, 내가 기둥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이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도 자식에게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