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류련 Jul 28. 2020

나 때문에 우리 팀장이 다른 팀 팀장과 싸울 때

네,,,? 아니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다 저 때문입니다...

옛날 회사에서 일을 할 때, 평소에도 말을 조금 거칠게 하는 개발팀 팀장 A가 있었다. 가끔 그와 협업을 해야 할 때, 난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 날은 나의 기획을 그가 개발할 수 있도록 토스해주는 미팅 날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획안을 조금 모호하게 전달 한 모양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나의 탓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들으면서 되게 짜증 났던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보고 싶은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요.
개발자랑 대화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난 그의 말을 듣자마자 크게 당황했다. 그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상대방의 기분을 그르칠 정도로 모호하게 말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당시 미팅에는 우리 팀 팀장도 함께 있었는데, 팀장은 발끈하며 말했다.


"A님. 짜증 났다느니 하는 그런 감정적인 워딩은 삼가 주세요. 같이 일하려고 모인 사이에, 자기 기분 드러내는 건 성숙하지 못한 행동 아닌가요?"


이 말을 듣던 A도 마찬가지로 발끈했다.


"아니 그럼 짜증 난 걸 짜증 났다고 표현하지 뭐라고 하죠? 애초에 구체적으로 업무를 전달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죠."


내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해 나의 팀장과 개발자 A가 싸우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말로 내가 앉아 있는 의자에 수천 개의 가시가 돋치는 기분이었다.


"기획자가 하는 말이 모호하게 들렸으면, 어떤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구체적으로 더 설명을 해달라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럼 제가 미팅할 때마다 그렇게 구구절절 말해야 하나요?"


"말 못 할 이유는 뭐죠? 협업하는 사이에 그게 어려운 건가요?"


"솔직히 짜증 났다는 말 하나 때문에 이렇게 발끈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미팅할 때마다 기획자들 말에 다 맞춰달라니 더 어이가 없네요. 화내야 하는 건 제 쪽인 거 같은데요."


"어떻게 그걸 기획자한테 무조건 맞춘다고 생각하세요? 협업하는 사이에,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서 서로 더 노력하자는 거죠. 그걸 왜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라고 말씀하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 다 제 잘못입니다. 그만 싸워주세요 제발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모든 게 나 때문에 일어난 거 같았다. 물론 우리 팀장과 개발팀 팀장 A의 사이는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로 촉발된 이 사건에서 나는 중간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결국 나는 적당한 마무리 멘트를 하며 이 시간을 끝내려 했다.



"요즘 업무도 많으신데 제 말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셨을 거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이고 기획자로서 명확한 구체성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제가 모호한 지점이 없도록 커뮤니케이션에 힘쓰겠습니다! 죄송해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나의 입꼬리는 이미 파르르 떨고 있었다. 개발팀 팀장은 적당히 알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팀장은 트러블 나지 않게 잘 마무리했다며 나를 감쌌다. 하지만 협업할 때는,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며 잘 보고 배우라고 했다.



이쯤 되니 내가 회사에 일을 하러 온 건지 싸우러 온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의견 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고 마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긍정적 결과를 위한 대화가 아니었다. 그저 그 상황에서 그를 이기기 위한 말들이었다. 나는 이런 대화와 상황에 진절머리를 느꼈다. 직장 생활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은데, 협업까지 누군가와 싸워 이겨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나는 기싸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것인데 말이다.



결국 이 일은 인사팀에 공유됐고 HR 담당자가 중재자로 참여하는 회고 미팅이 열렸다. 오랫동안 높은 긴장 상태가 지속된 두 팀장 사이를 매듭짓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미팅에서 평소에 서로 불편했던 점과 마음이 상했던 일들에 대해 털어놓게 됐다. 나와 HR 담당자는 최선을 다해 수습했고 표면적으로는 두 팀장의 사이가 어느 정도는 봉합돼 보였다. 그리고 뒤풀이에서 술 한잔 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서로를 잡아먹고 이기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려고 안달 났던 사람들과 같이 술자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끼리 뒤풀이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날 개발팀 팀장으로부터 메신저를 받았다.


'남을 배려하면서 말한다는 게 뭔지 오랫동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거 같아요. 먼저 날카롭게 말해서 미안해요.
기분 나빴을 텐데도 다정하게 답해줘서 고마워요.'


그즈음은 전 사원을 평가하는 시즌이었고 각자가 각자에게 피드백을 남길 수 있었다. 내가 받은 피드백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동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훌륭해 협업하기 매우 수월함. 다정한 성격으로 팀 내에 긍정적인 기운을 퍼뜨려 팀의 사기를 북돋움.'



이 일을 계기로 싸우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더욱 확실해졌다. 난 절대로 이기기 위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기 위해,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일을 말하니 친구는 다정함도 재능이라고 말했다. 내가 가진 다정함이 재능이라면, 난 그걸 맘껏 발휘하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정말이지 난 계속 다정한 말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기기 위한 대화는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유일한 장점이 그저 다정한 것에 그치더라도, 나는 그것에 만족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는 말이 아니라 다정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것이 정말로 그 사람의 잘못인가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