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류련 Aug 03. 2020

저는 27살로, 아직 이뤄놓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의 서른 살은 오직 나만이 정해야 한다

간절히 바라던 회사의 입사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안감힘을 써오며 버텨오던 것들이 무너져버렸다. 27살, 이십 대의 후반이 되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나 자신을 챙겨 오던 시간들이, 더 이상 가치 없게 느껴졌다.



나의 서른 살은 멋져야만 한다는 강박


나는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무서웠다. 나에게 서른 살이란, 무언가 이뤄놓은 것이 많아야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아도 나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했다. 커리어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 했다. 취미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 자기 계발을 해야 했다. 사랑을 나누는 애인 같은 그런, 언제든 안길 수 있는 포근한 존재가 있어야 했다. 또한 자기 관리를 해가며 스스로의 외면과 내면에 만족해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야 했다. 사회에서 멋져 보이는 서른 살은 으레 이런 거 같았다. 나는 왠지 그런 서른 살이 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될 것만 같았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만 같았다. 



멋진 커리어와 성숙한 내면 + 준수한 외면 정도는 돼야 진정한 서른 살이지ㅎㅎ



그런데 현실은 영 달랐다. 나는 도저히 내가 정해놓은 서른 살이 될 수 없을 거 같았다. 27살의 나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했다. 커리어는 개판인 수준이었다. 일관된 직업경험이 없어서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취미랄 것도 없었다. 꾸준히 해오던 헬스는 도통 효과가 안 났다. 헬스를 했다고 말 하기에도 창피한 몸매였다. 진실하게 사랑을 나눈 애인도 없었다. 나의 외면과 내면은 볼 것도 없었다. 난 항상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렸으며, 거울과 카메라에 비친 나를 볼 때면 나 조차도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내가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지


내 삶이 정말로 소중한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괴로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그저 중간 정도에 불과하며,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그들을 일렬로 줄 세워 사진을 찍는다면 나는 프레임 안에 들어서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지만, 나 같은 게 나 자신을 사랑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상처 주는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감히 내가 무엇을 시작하고 무엇을 이뤄낼 수 있을지. 내 또래들은 자신만의 성취를 하나씩 이뤄나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왜 아직 제자리걸음인지. 나에게 살아갈 이유가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전혀 없었다.


아 나는 내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불안한 자괴감들이 내 안을 떠돌았음에도, 나는 바보같이 지금껏 나를 잘 다스려왔다고 생각했다. 약물과 상담 치료를 통해 잘 극복해왔으니까, 내 감정을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온 것이다. 하지만 면접 탈락이라는, 수 없이 평범하게 반복되는 작은 사건 하나에 무너져버린 내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성숙한 척 연기를 하며 나 스스로 자신을 속였던 건 아닐까?



그런 서른 살이 아니면 뭐 어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맞았다. 사실 면접에 탈락하는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나 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서른 살이면 으레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믿음. 나는 내가 정해놓은 서른 살에 잘 부합할 것이라는 믿음. 



사실 그런 서른 살이 되지 못하면 패배자라고 정의 내리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나는 스스로도 공감하지 못하는 믿음을 가졌으면서, 그 믿음에 내가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 내가 면접 탈락이라는 평범하게 불행스러운 사건에 위축되는 건 당연했다.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었으니까.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그걸 이루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거니까. 으레 그래야만 하는 서른 살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만족하고 원하는 서른 살의 모습이 뭔지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떤 걸 이루고 싶은지 농도 짙은 고민을 해야만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어쩌면 나는 이렇게 바보 같은 패턴을 계속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안심했다가 무너지고, 힘들어한 다음에 다시 일어서서 나의 믿음을 믿는 일.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의 방식이다. 이를 이해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누군가 왜 그렇게 바보 같이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답해야겠다.


저는 27살로, 아직 이뤄 놓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이 바보 같은 일들을 계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서른 살이 지나도 그대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삶입니다. 이해받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어쩔 수 없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때문에 우리 팀장이 다른 팀 팀장과 싸울 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