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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Aug 05. 2020

예쁘게 보이는 게 아니라, 나답게 보이고 싶어요

정육면체 모양 수박을 아세요?

일본에는 정육면체 모양 수박이 있다. 수박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정육면체 모양 틀에 가둬놓고 키우면 정육면체 모양으로 자라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틀에 맞춰져서 자라난 수박의 맛은 정말 형편이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는 없고 그냥 관상용으로 둔다고 한다. 참 이상하다. 과일은 동물에게 먹히고 씨가 흙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정육면체 틀에서 키워진 이 수박은 그저 관상용으로만 존재의 이유를 다한다.


틀에 잘 맞춰져서 이쁘게 각진 모양일수록 비싸다.


어쩌면 나는 그런 정육면체 모양 수박 같은 사람으로 자라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커버렸으니까. 어쩌면 나에게 정육면체 틀은 학교였다.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학교는, 항상 내게 사회가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곳인지 아냐며 으름장을 놓았다. 



초중고 학생일 땐 내가 뭘 원하는지 탐색해볼 기회도 없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었지만, 그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과 취업이 잘 되는 과에 가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것 마냥 말했다. 친구들은 명문 대학에 가지 못하면 정말로 인생이 망해버리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취업이 잘 될만한 수업과 공모전, 자격증 취득 같은 활동들을 했다. 어른들은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면 성공한 인생일 수 없다고 했다. 나와 친구들은 자연스레 높은 연봉에 높은 네임 밸루를 따내야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학교와 어른들은 정육면체 틀을 더 견고하게 조여왔다. 


나와 친구들은 그것이 절대 불가변 한 진실인 줄만 알았다. 난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서류에서 번번이 불합격했고, 겨우 붙어서 면접까지 가도 결국엔 탈락이었다. 오랜 시간 헤매다가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커리어 컨설턴트는 이곳에서 경력을 많이 쌓아 대기업으로 점프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정육면체 틀에서 예쁘게 커가는 수박으로 자라 갔다.



하지만 그 틀이 나와 맞지 않았다. 내가 맡은 업무는 나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내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퇴근하고 나서 카페에서 틈틈이 소설과 에세이를 쓸 때가 가장 즐거웠다. 나의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행복했다. 글을 더 배우고 많이 쓰고, 습작을 만들어낼 때 진짜 내가 되는 기분이었다. 글을 쓸 땐 틀에 갇힌 내가 아니라, 진짜로 자유로운 내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돈벌이가 될 리 없는 글쓰기에 올인하는 건 너무나도 모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정육면체에 단단히 끼워 맞춰지면서, 그 틀을 깨고 나가고 싶은 욕구도 똑같이 커졌다. 다만 용기가 없었다. 이 틀에서 한번 벗어나면, 관상용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될 게 뻔했다. 틀에서 나와 나만의 모양으로 변해버리면, 다시는 그 틀에 들어갈 수 없을 거 같았다. 


 틀 안에서 살면, 나는 정말로 행복할까?


이쯤 되면 결정을 해야 했다. 나 스스로가 나다운 사람이 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난할 것이냐, 어떻게든 회사를 다니고 벌며 다달이 살아낼 것이냐. 살면서 타인에 평가받는 것을 견뎌야 하는 건 당연했지만, 내가 사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일로 판단당하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다. 그 틀에 잘 맞춰지지 못했다고, 각이 덜 졌다고 평가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관상용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으로서 스스로 만족하고 맛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보기에는 이쁘지만 맛이 없어 손길 조차 가지 않는 관상용 정육면체 수박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에 취직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었다. 정육면체 틀에서 나오기로 한 것이다. 퇴사를 하고 오랫동안 초안만 써오던 소설을 다시 썼다. 그리고 공모전에 투고했다. 취미로 써오던 글이 당선될 리는 없겠지만, 그냥 그대로도 만족스러웠다. 나는 나다운 모습을 되찾기 위해 그제야 계단 하나를 밟은 거니까.


나는 단지 시작했을 뿐이다.


나에게 정육면체 틀에서 이쁘게 크라고 말하던 학교와 어른들이 보기엔 내가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나의 글로 안정적인 경제력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꿔지는 삶을 택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더 만족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나는 진짜 나다움을 이제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건 무모함이 아니라 응원받아야 마땅한 여행이다. 나는 틀에서 벗어났기에 한 층 더 자유로워졌다. 나는 정육면체가 아니라 다른 어떤, 나만의 모양으로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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