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아질 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자
내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이 케이크를 사다 줬고, 내게 고깔모자를 씌워줬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후-하고 불어서 껐다. 생일 선물을 받아 들고 고맙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며 웃어 보였다. 케이크를 자르고 접시에 덜어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말했다.
얘들아. 사실 나 방금 문자로 면접 불합격했다고 통보받았어...
세상에 이렇게나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이자카야의 직원이 우리 테이블에 안주를 놓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리고 나도 입을 뗐다.
"요즘은 너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서 힘들다. 도저히 힘을 낼 만한 에너지가 없다."
사실 그즈음에 나는 정말로 엉망이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통장의 잔고는 0을 향해 수렴해가고 있었지만 돈 나갈 곳은 너무나도 많았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힘들다 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지는 날엔 나는 항상 나만의 동굴로 숨어버렸다. 내 동굴은 내 마음의 바다 아주 깊은 곳에 있었다. 심해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면 난 한 동안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그래서 주위와 연락을 끊어버리고 잠적하고는 했다. 가끔 누군가를 만나도, 내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구구절절 나의 힘듦을 늘어놓는 것조차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그 고통을 들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나의 모습도 별로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면서도 답답해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존중해줬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했다. 나 역시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나도 이런 나를 걱정했다. 우울함과 가라앉음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저 동굴도 도망치는 거라면, 나는 여전히 나약한 존재로 남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딱 한 번만, 지금과는 다르게 주변에게 도와달라고 말해보기로 했다. 그냥 살면서 한 번쯤은 약한 모습을 티 내보자고 생각했다. 그 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다. 자존감이 떨어져서 무언가를 시작할 마음이 없다고 솔직히 고백한 거다. 막상 털어놓고 나서도 난 마음을 졸였다. 나의 힘듦을 별 거 아니라고 평가절하 당하면 어떡할까 불안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묻지 않았다. 무엇을 꼭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거 같았다. 딱 이번 주 까지만 동굴에 있다가 나오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무거운 얘기를 털어놔서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들은 오히려 고맙다고 답했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엉망인 상태로 쓰러져버리고 싶을 때,
언제든 그래도 돼.
그런 걸 언제든 말해도 돼. 기대도 돼.
어려워하지 말고 이제 조금씩 의지하는 연습을 하면 돼.
꼭 행복하고 모든 것들이 웃음에 가득 찬 생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생일이었다. 앞으로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우울한 날들엔, 주변에 마음껏 알리고 의지하기로 했다. 좋은 소식을 마음껏 자랑하는 것처럼, 나의 힘듦도 마음껏 자랑하고 나누기로 했다. 앞으로의 생일들도 늘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차있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난 괜찮을 거 같다. 그냥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 날이면 나의 주위 존재들에게 잠깐 기댈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거 같다.
나는 이제야 조금 더 단단해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