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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n 20. 2019

선하고 맑은 눈빛을 가진 채 산에서 내려와야지

-      정지용 『장수산 1』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음악 취향이 독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태어나기 한참 전인 70년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친구들이 노땅 취향이라고 놀려댔다. 대부분 가사가 왠지 모르게 가슴에 다가와서 좋아했다. 지금도 뭘 모르는 나인데, 지금보다 더 어렸던 그때 뭘 안다고 그랬는지 웃음이 나지만 뜻 모를 그 가사들에 감동하곤 했다. 지금도 힙합부터 아이돌 노래, 발라드와 팝, 국악, 뉴에이지까지 다양한 노래를 듣는다. 


음악을 들을 때 작곡가와 작사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만들었을까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노래가 바로 시인과 촌장의 '한계령'이라는 노래다. 우울을 노래하는 음악은 많았지만 이 노래는 가사가 싯귀같았다. 더욱 관심이 생겨 노래에 대해 더 찾아보았다. 시인 정덕수는 하루를 먹고 삼일을 굶을 정도로 가난했고 여러 이유로 힘든 날들을 보냈다고. 나물을 캐다 파는 생업 때문에 한계령에 매일 올랐다 한다. 하루는 죽음을 결심하고 한계령에 오른다. 매일 가던 산이었지만 그날따라 산은 자기 보고 다시 내려가라고 등 떠밀었고 산을 보며 다시 삶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저 산은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 시인과 촌장, 한계령 중


정지용의 장수산을 읽자마자 이 노래가 떠올랐다. 답답하고 풀 수 없는 마음에 산을 간다. 하지만 거대한 산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흔히 들릴 법한 동물들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인지 화자의 마음 상태 때문에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보는 이들에겐 이미 충분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화자가 어떤 이유로 장수산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메아리가 칠만큼 깊은 산에서 화자는 더욱 깊은 슬픔과 고독을 느낀다. 어쩌면 산에 오른 게 아니라 계속 산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물리적으로는 산에서 내려와도 계속 산 위에 있으며 슬픔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화자는 결국 산에게 위로 받는다. 여섯 번을 올라가도 여섯 번을 졌다고 표현하며 스님 한 명을 말하는데, 깨끗하게 늙었다고 소개한다. 그 스님은 어떤 아우라를 뿜어냈길래 ‘깨끗하게 늙었다’라고 표현했을까? 여튼 화자는 결국 무섭도록 고요하고 메아리만 치는 산, 하지만 깨끗하게 늙은 승을 가진 장수산에 결국 위로 받는다. 결국 견뎌야 함을 스스로 깨닫고 시는 마무리 된다. 그리고 그는 산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내 지친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시인과 촌장, 한계령 중


얼마나 힘들어야 사람이 죽을 각오를 하고 산을 오를까. 작사가가 최근에 쓴 글을 보면, 한계령 때만큼 힘들었던 시절은 지났다고 한다. 누가 그때 당시에 얼마나 고달팠냐라고 물으면 받던 충격도 이제는 무덤덤하다고. 정말 그럴까. 아니 정말 그렇겠지. 공감 가는 글을 읽거나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괜히 내게 대입해보고는 한다.


나는 울적하거나 고민이 많은 날엔 괜히 입는 옷에 더 신경을 쓰고 나간다. 내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일까. 하루는 전부 검정색 옷을 입고 가죽 라이더 재킷에 신발까지 검정색으로 입고 무서운 눈빛을 장착하고 나갔다. 괜히 더 차가워 보이고 싶어서 그랬으려나. 뭐 하여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탔고 운이 좋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흑발이었던 머리가 대부분 백발로 변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왠지 나를 보는 눈빛이 선했다. 눈가의 주름이며 그것에 기품있게 얹혀있는 안경이며, 하얀 머리에서 나오는 분위기에 왠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도 멍하니 그분의 눈을 쳐다봤고 5초쯤 눈을 맞췄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서로의 시선을 옮겼다. 지하철을 내리며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말 어이없었다. 처음 본 이의 눈빛에 위로 받은 듯했으니까. 그날 저녁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괜히 그를 찾았다. 다시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분처럼 선하고 맑은 눈빛을 가진 채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지용이 본 그 스님도 그랬을까. 정지용도 어이없게도 처음 본 그 승려에게 위로를 받은 걸까. 


오늘 일을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에 드는 날이었다. 나도 정지용처럼, 시인과 촌장처럼 빨리 산에서 내려와야지. 선하고 맑은 눈빛을 지니고 늙어 다른 이가 산에서 내려올 수 있는 글이나 노래 뭐라도 창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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